한 남자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긴 머리와 덥수룩한 수염. 뭐지? 이 익숙한 느낌은…. 인터뷰를 위해 사무실을 찾아온 이는 '라비 드 파리(La vie de Paris-파리의 인생, 큐리어스)'의 저자 김진석 작가다. 눈이 마주친 두 남자는 서로 놀랐다. 처음 만났지만, 이질적이지 않은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낯설지 않은 익숙한 느낌의 두 남자는 지난달 24일 오후 <더팩트> 편집국에서 만났다. 모양새가 닮은 두 남자는 ‘라비 드 파리’에 담긴 사진을 보며 프랑스 파리를 함께 걸었다.
김 작가가 사무실에 들어서는 모습에 놀란 이유는 기자의 과거 행색과 너무나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9~10월 두 달 동안 파리 시내를 걸었다. 하루 20~30km 정도를 걸으며 파리의 1구부터 20구까지를 카메라 렌즈에 담았다. 그렇게해서 만들어진 책이 '라비 드 파리'다.
두 남자의 공통점은 ‘파리’라는 공간을 다녀온 경험이 있다는 점과 덥수룩한 수염이었다. 인터뷰는 서로의 동질감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진행됐다.
"랜드마크가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의 사진을 찍고
그걸 책에 담았다."
김 작가가 '라비 드 파리' 작업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배정한 기자 |
‘프랑스의 인사법인 비주(bisou), 서로 볼을 맞대고 인사를 한다. 나라마다 반가움을 표현하는 방법은 모두 다르지만, 그중에서도 비주는 가장 친근함을 느끼게 하는 인사법이 아닐까 싶다. 서로의 체온을 느끼는 것. 상대에 대한 배려이자 애정이다.’
그의 책 68p에 나오는 글이다. 김 작가가 파리에서 사진을 찍으며 느낀 감정이 무엇인지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책은 사진과 짧은 글로 이루어졌다. 포토에세이지만 글은 많지 않다. 책 ‘라비 드 파리’에 실린 사진을 보면 글이 왜 필요 없는지 알 수 있다.
책 ‘라비 드 파리’에는 유난히 인물 사진이 많다. 파리의 유명 랜드마크는 배경이 되고 중심엔 사람이 있다.
“(허허허) 그런데 수염이 이렇게 덥수룩한 기자를 본적이 별로 없는데….”
김 작가와의 첫 대화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를 만나기 전 먼저 읽은 책을 보는 내내 든 생각은 ‘부러움’이었다. 부러우면 진다지만 김 작가에게는 지기로 했다. 그러면서 그는 왜 이 책을 만들었을지 궁금했다.
'라비 드 파리' 김 작가의 책에는 화려한 파리의 모습이 아닌 파리지앵의 소박한 일상이 담겼다. /이철영 기자 |
-‘라비 드 파리’를 기획한 계기가 있나.
그동안 걸으며 사진을 많이 찍었다. 제주 올레는 재능기부 형태로 걸으며 사진을 찍어 왔다. 그러다 도시를 찍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도시는 파리가 처음이다. 파리 시내를 걸으며 그들의 일상을 담았고, 랜드마크가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의 사진을 찍고 그걸 책에 담았다.
-왜 파리였나. 런던도 있고 뉴욕도 있고 도시는 많은데….
예전에 와인 취재차 파리에 5~6번 다녀온 바 있다. 런던, 뉴욕 등도 대상이었지만 파리를 선택했다. 이유는 파리 도시 자체가 나선형이고 천천히 걷자는 의미와 가장 잘 맞았다. 그래서 파리를 선택했다.
그는 "배경의 완성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행복한 순간을 담고 싶다는 욕임이 이었다. 행복한 순간은 언제일까…"라고 고민했다고 했다. 이런 이유로 그의 책 '라비 드 파리'에 실린 사진 대부분의 주인공은 사람이다. 김 작가가 생각에 잠겨있다. /배정한 기자 |
-약 10만 장의 사진을 찍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중 ‘라비 드 파리’에 300장이 담겼다. 어떻게 선택됐나.
10만 장 중 6000장을 추려 출판사 에디터에게 보냈고, 그중 300컷이 책에 실렸다. 온전히 에디터의 손에 의해 선택된 사진들이다. 책을 만드는 에디터 느낌에 맞는 사진을 골라 책을 만드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사진은 전시로 보여주면 된다.
-책을 보니 유난히 인물이 많다. 파리의 관광지보다 사람들의 표정에 더 집중한 것 같다. 이유가 있나.
배경의 완성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행복한 순간을 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행복한 순간은 언제일까…. 지금 우리들의 모습은 행복할까. 뉴스를 보면 늘 꾸며져 있거나 사건사고 등 불행한 것들을 자주 보게 된다. 그래서 난 파리에서 랜드마크를 배경으로 하고 사람의 일상을 그 안에 담고 싶었다.
-거리를 걸으며 사진을 찍었다. 에피소드가 있다면.
백인 시각장애인이 지하철 밖으로 나가는데 서로 모르는 흑인 남자가 도와주는 장면을 보았다. 그런데 도움을 줄 때 ‘도움을 드려도 되겠느냐?’고 묻더니 팔을 손가락으로 살짝 잡더라. 사람을 도와주지만, 가는 길에 보조적인 느낌을 받았다. 하루 이틀 연습한 것이 아니라 본래가 가지고 있는, 관용이 몸에 밴 것 같은 파리인들의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
전 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파리라는 도시는 분명히 매력적이다. 도시 곳곳에 자리한 공원은 시민의 휴식처이면서 사색의 공간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10여 년 전 당시에도 느끼고 보았던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관광지가 많은 도시답게 사람으로 넘치는 곳 또한 파리다. 유명 관광지에는 어김없이 지린내가 진동했고, 지하철 부정승차는 밥 먹듯 하는 곳이 또 파리다. 두 남자는 파리의 지린내와 부정승차에 대해 이야기하며 한참을 웃었다.
김 작가가 프랑스 파리에서 작업하던 중 겪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고 있다. /배정한 기자 |
-외국에 나가 60일을 생활하려면 돈이 많아야 할 것 같다. 돈이 좀 있나 보다.
비용적인 부분을 고려해 파리를 선택하기도 했다. 파리 한인 민박집은 아침과 저녁을 준다.(웃음) 그리고 가기 전 소셜펀딩이 돼서 비용적인 문제가 크진 않았다. 하지만 알다시피 남의 돈 가지고 가다 보니 아끼게 되더라.
-소셜펀딩으로 파리에 가서 작업하면 작가로서 의무적으로 찍어야만 했던 건 아닌가.
사진작가는 예술을 하기도 하지만 직업이기도 하다. 한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도움을 주는 분들이 있어 할 수 있었다는 고마움이 있다. 따라서 다음날 카드를 찍을 장소 등에 대한 이미지 머릿속으로 100컷 정도를 상상했다. 이렇게 하면 현장에 가서 사진을 찍는 속도가 빨라진다.
-우리나라는 사진찍히는 것에 상당한 거부감이 있다. 파리 시민을 찍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작업은 무척 편했다. 카메라를 받아들이는 인식이 국내와 다르다. 기분 나쁜 표정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피하고 초상권 이야기를 하는 데 파리 시민은 그렇지 않아 작업하기 좋았다.
"난 여행자이고 이방인의 시선으로 그들을 봤다.
일상적인 길을 나란히 걸었을 뿐이다."
-사진을 찍으며 본(우리가 책에서 본) 파리지앵의 일상은 어땠나.
행동이 매우 느리고 여유롭더라. 특히 공원 문화는 너무 매력적이다. 공원, 거리에서 빵을 먹고 자유롭게 느리게 걷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특히 타인을 배려하는 개인주의, 즉 다양성을 인정하는 그들의 문화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는 "난 여행자이고 이방인의 시선으로 그들을 봤다. 일상적인 길을 나란히 걸었을 뿐이다. 그들의 삶을 살고 카메라를 들면 객관적으로밖에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비교하지 않았을까. 그들을 판단하기보다 차이를 인정하려 했다"고 말했다. /배정한 기자 |
-두 달 동안 파리에 있으면서 그들의 삶에 녹아들었다고 생각하나.
난 여행자이고 이방인의 시선으로 그들을 봤다. 일상적인 길을 나란히 걸었을 뿐이다. 그들의 삶을 살고 카메라를 들면 객관적으로밖에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비교하지 않았을까. 그들을 판단하기보다 차이를 인정하려 했다.
그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가야 할 곳이 더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전라북도 고창의 사계를 고향을 떠나 살아온 이방인의 눈으로 어떻게 변했고, 사는지를 찍고 있다. 또 내년엔 독일 베를린을 걸을 예정이다. 그가 베를린으로 떠나는 것은 우리나라의 통일된 모습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계획됐다.
인터뷰 마지막, 그의 말에서 사진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느낄 수 있었다.
“세계로 다니면서 사람들의 일상적인 행복한 모습을 찍으며 나도 행복해졌다. 오랫동안 사진을 찍고 싶다.(웃음) 소원이 있다면 작업을 하다 죽었으면 좋겠다.”
인터뷰를 끝낸 두 남자는 함께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다시 파리를 이야기했다. 두 남자의 이야기는 파리와 우리나라의 담배 문화였고, 그렇게 즐거운 대화를 끝냈다.
▶김진석 작가는?
김진석 작가는 지난 2003년부터 언론사 사진기자로 현장을 누비다 10년 만에 일을 그만뒀다. 맞벌이 아내에게 미안했지만, 사진기자 일을 하기엔 이미 정신적으로 너무 힘든 상태였다. 그렇게 사진기자 생활을 그만 둔 그는 제주도 올레를 걸으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이어 헝가리, 일본, 아프리카, 히말라야 등을 걸으며 사진을 찍고 이번까지 8권의 책을 출간했다.
[더팩트 ㅣ 이철영 기자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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