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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출사·정보

[스크랩] 파리의 골목길2

by 동아스포츠 / 相 和 2018. 7. 1.

#2 어딜 가든 나를 사로잡은 골목길

파리 오데옹역 부근을 돌아다니다가 만난 골목길 풍경


런던 테이트모던 쪽 템즈강변을 따라 동쪽으로 가던 중 나있던 골목

런던과 파리의 도시 풍경은 확실히 서울과 많이 달랐다. '도시'라고 하면 흔히 빼곡한 고층 건물과 아파트 단지 등을 떠오른다. 이 두 곳은 일부 그런 모습도 있긴 했지만 전반적으론 다르더라. 대신 옛 정취와 고풍스런 자태가 묻어나는 건축물과 골목길들이 그대로 보존된 채 도시가 형성된 흔적이 자주 보였다.

특히 나는 절묘하게 휘어져 있는 곡선의 골목길들을 보며 자주 발걸음을 멈추곤 했다. 자연스러운 멋. 여기 땅에 살고 있는 민중들이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나는 오래된 풍경. 꽉 짜여진 계획에 따라 설계된 건물과 도로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정겨움. 골목길이 자아내는 곡선의 미는 곧 '스스로 그러한' 자연스러움 속에서 잉태된 모습으로 보였다. 계획의 권위보다는 '따로 또 같이' 어울리는 소박한 자유를 느꼈다.



#3 손때 묻은 아날로그 문화
런던 시내 소호 부근을 돌아다니다가 본 음반 가게. 많은 LP판이 있었던.
세련됨, 새 것, 잡티 없는 깔끔함 등이 선진국의 표상이라면, 서울을 따라올 도시는 없어 보인다. 최첨단 디지털화된 모습을 기준으로 선진국을 가른다면, 역시 서울이 으뜸 수준일 게다. 그러나 사람은 다양한 감정과 감각을 가진 존재이다. 도시를 사는 사람들의 생활수준이나 삶의 질 또한 위의 잣대만으론 평가될 수 없다.

런던과 파리에서는, '부웅~'하는 도르레 소리가 들리는 골동품 같은 승강기가 호텔에 버젓이 사용되고 있었다. 밟으면 '끼익~끼익~' 소리를 내는 오래된 나무 계단이 놓여진 집을 여전히 철거하지 않고 삶터로 썼다. 100년도 훨씬 넘어보이는 집, 건물, 골목길은 도처에 널려 있었다. 디지털 음원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줄 알았던 LP음반을 여전히 애용하는 모습도 보였다. 주말이면 중고품 벼룩시장이 열렸다. 집 구석에 방치돼있던 고물이 새 주인을 만나 보물로 둔갑하는 광경을 엿보았다.

선진국이라고 하는 게 꼭 세련됨, 화려함 등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날 들른 파리 방브벼룩시장. 물건도 많고 사람도 많았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몸은 피로했는데, 잠은 오질 않았다. 그래서 영화 목록을 뒤적거렸다. 마침 변영주 감독의 영화 '화차'가 눈에 들어왔다. 시작 버튼을 눌렀다. 결론적으론 괜히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영주의 사회고발이 돋보인 작품이었고 영화 자체는 좋았다. 그러나 지금 볼 영화는 아니었다. 유럽의 낭만 속에서 붕 떠 있던 기분이, 급속히 현실의 나락으로 떨어져버리는 기분이었다. 우울한 감정이 집으로 가는 내내 가슴 한복판을 감싸 안았다.

서울에 도착해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 문득, 군대시절 휴가 나갔다가 부대로 복귀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런던과 파리에서의 일주일은 초짜 여행자인 내게 깊은 인상을 줬나 보다. 이제는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 다시 서울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순간. 어지럽다.

-2012년 주민's 런던-파리 여행기 끝-




여행기 작성 뒷이야기

1년이 다되가는 지난 여행 사연을 다시 상기하며 블로그에 적을 수 있었던 이유? 바로 이 수첩 덕분! 나는 두 도시 곳곳을 지나다니다가, 떠오르는 생각이나 마음의 울림이 있으면 바로 수첩을 꺼내들었다. 여행지에서 느껴지는 소중한 감정들, 순간적인 벅차오름, 짙은 여운을 남기는 경이로움 등이 시간에 바래지 않길 바라며 글을 썼다.


여기 올린 사진은 다 이 녀석이 찍은 것!
-7일차 여행기-
2012.9.1 오전: 방브 벼룩시장, 몽파르나스 타워


#1. 방브 벼룩시장.. 누군가 쓰다 만, 그래서 더 매력적인 '감성 엽서' 득템

마지막 날의 아침이 밝았다. 오후에 귀국 비행기를 타야 하니, 이제 파리에서의 남은 일정은 정오까지의 오전 시간 뿐.

모처럼 멀리까지 왔는데, 뭐라도 사들고 가야지? 그러나 어디에나 즐비한, 유명 브랜드샾에서 쇼핑을 하는 건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주머니 사정도 넉넉지 않았을 뿐더러, 파리에 왔으니 파리의 흔적과 기억을 담아갈 수 있는 특별한 무언가를 담아가고 싶었다. 화려한 무언가보다, 평범한 현지인들의 땀방울과 손때가 묻어 있는 소박한 기념품 말이다.

그래서 오기 전부터 파리의 재래시장, 프리마켓 등을 알아봤고, 마침 민박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열리는 장이 있더라. 토요일마다 열리는데, 때마침 오늘이 그날이었다. 주인공은 파리의 남쪽 14구 방브역 부근에서 열리는 방브 벼룩시장(Vanves Flea market)!


그야말로 시장 바닥 분위기, 수많은 물건들로 난장이 벌어진 모습이었다. 시장이라고 무슨 형태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쭉 이어진 거리 마디마디에 각자 싸들고 나온 물건들을 꺼내놓았다. 아들과 함께 봉고차에 한 가득 집안의 물건을 실어와서,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상인 등. 집에서 잉여로이 굴러다니는 물건들을 바리바리 짊어 지고 나왔을 법한 모습이 자주 보였다. 손수 제작한 미술, 공예품을 정성스레 들고 나온 예술가들도 있었고.




세련된 새 물건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중고품, 골동품 등 향수를 자극하는 물건들이 진열돼 있는 풍경. 값비싼 명품이나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여길 온다면, "촌스럽게 무슨 고물을 이렇게 모아놨대?"라고 여길 법할 광경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필요 없는 고물일 뿐이지만, 네게는 소중한 보물이 될 수도 있기에 이런 시장이 여전히 남아 있지 않을까. 런던도 그랬고, 파리도 그렇고 여기 사람들은 단지 오래됐다는 이유로 버리진 않아 보였다. 새 것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보면 즉각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남루한 물건들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간직해두길 좋아하는 모습.

옛 추억을 상기시키는 오래된 골동품, 장난감, 서적 등은 물론이거니와, 녹이 잔뜩 슬어버린 커다란 열쇠 같이 쓸모로 치면 전혀 가치가 없는 빛바랜 물건들도 버젖히 거래되고 있었다. 특히 내가 가장 의아하게 느낀 것은, 글씨가 빼곡히 적힌 엽서, 편지까지도 가지고 나와 사고 팔고 있는 장면. 아니, 이미 사용해버린 엽서, 그것도 나한테 써준 것도 아닌 남에게 보낸 편지에 도대체 왜 관심을 갖는 걸까?

문득 대학시절 과방에 있던 '날적이 공책'이 생각났다. 과방 테이블에는 과 학생이면 누구나 한마디씩 적을 수 있는 공책이 하나 놓여 있어서, 일상다반사 이야기가 차곡차곡 채워졌다. 나는 언젠가, 옛날 선배들은 어떤 이야기를 썼는지 궁금해서 서랍 깊숙이에 있던 먼지 수북한 공책을 꺼내 본 적이 있다. 거기에는 지금과 다르지 않은 젊은 날의 연애감정 표출, 지금은 볼 수 없는 진지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적은 글 등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시대는 다르지만 보편성을 갖는 이야기부터 시대의 특수성을 반영한 치열한 이야기까지, 보는 나로 하여금 상당한 흥미로움을 선사했다.

삶의 희노애락이 담긴 사연들이 녹아 있을 빛바랜 엽서들. 한 사람이 진심을 담아 써내려간 '기억의 습작'이 뿜어내는 그윽한 감수성을 간직하고픈 마음에서 이런 것들까지도 시장에 나와 있는 게 아닐까?

방브 시장 그 자체에서 발산하고 있는 분위기도 이와 비슷했다. 어제를 돌아볼 여유를 잃고 앞만 보며 달려가는 작금의 삶 속에서, 전자와 기계로 소통하는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느릿느릿 한땀한땀 '아날로그적인 삶의 정겨움'을 느낄 수 있는 공간.


물건이 진짜 많았다. 앞서 말한 것들부터 생활용품, 미술작품, 가구, 공예품, 장신구, LP음반 등. 천천히 음미하며 둘러볼 심산이면 반나절 내내 할애해도 모자라 보였다. 그러나 나는 오늘 고국으로 떠나야 하고, 한두시간 정도만 머물 수 있는 상황. 무엇을 사야 잘 골랐단 소리를 들을까?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은 평범하디 평범한 공책 한권이었다. 누군가, 파리의 한 청소년이 새학기 새마음으로 사 놓았다가 결국엔 쓰지 않은 노트는 아닐까? 어찌됐든 평범한 일상에서 자연스레 잉태돼 나온 잉여품임은 분명했다. 쓰지 않고 세월은 흘러 누렇게 변해버린 빈 종이. 머나먼 땅에서 온 내가 이어받아, 새로이 이야기를 써내려가면 낭만 있을 것 같았다. 서로 일면식은 없지만, 얼굴 없는 인연이 만들어 준 소박한 공책 하나. 결국 득템~



또 곧바로 이어서 눈에 들어온 것. 파리를 기념케 해줄 엽서 묶음. 이름 모를 파리지앵이 쓰다가 남겨둔 흔적이 짙게 베인, 몇 장은 뜯겨져 있는 모습이 더 사람 냄새가 났다. 시내 곳곳의 기념품 샾에도 파리 전경이 담긴 옆서들이 즐비했지만, 끌리는 무언가는 없는 느낌이었다. 이건 쏙 마음을 끌어당기네? 누군가 몇장 쓰다 만, 그러나 정겨움을 물씬 발산하는 수십년도 넘어보이는 손때 묻은 엽서. 흑백으로 표현된 파리의 옛 풍경이 담긴 배경 사진도 마음에 들었다.

소소하지만 특별함이 뿜어져나오는 기념품, 단돈 1유로에 또 하나 득템~ 소중한 사람들에게, 엽서 그 자체에서도 느껴지는 빈티지한 감성을 듬뿍 담아 하나하나 써 줄 생각.


#2. 몽파르나스 타워.. 파리의 마지막 풍경



만감이 교차한다. 209미터 초고층 빌딩에서 내려다보는 파리의 전경. 지난 3일 동안 감탄에 마지 않으며 걸어다닌 좁은 골목길, 하염 없이 주저 앉아 낭만과 여유를 만끽한 곳, 때로는 스치듯 지나갔던 여운의 장소들 까지, 이 아찔하게 높은 타워에 올라 희미하게 보이는 추억의 장소들을 더듬어 보다.

(몽파르나스 타워를 마지막 여정지로 잡은 이유? 간단하다. 민박집과 가까웠기 때문. 떠나기 전, 파리의 전경을 바라보며 지난 시간을 음미하고픈 생각도 있었고.)

갑자기 가슴이 아려온다. 왔으면 가야하는 법이거들, 지금 순간 만큼은 커다란 아쉬움만 한가득 가슴에 쌓여 있다. 그만큼 파리와 함께한 순간들은 내게 매우 깊은 인상을 줬다. 정말 아름답고 정겨운 도시다.



몽마르트르 언덕에서도 느낀 바지만, 파리는 온통 평지였다. 빼곡히 자리하고 있는 건물, 거리, 집들이 어지러우면서도 '따로 또 같이' 정갈 있게 어우러져 있는 느낌이었다. 마지막 풍경을 담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렀다.

돌이켜 다시 생각해봤다. 큰 탈 없이 여정을 했고, 대부분이 경이롭고 즐겁고 새롭고 좋았던 시간들로 지난 날들이 기록되고 있다. 짧은 기간이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꽉찬 만족감을 안고 가자. 아픈데 하나 없이, 매일 같이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구경 다니고, 골목골목 체취를 느낄 수 있었던 것도 큰 축복이 아니었던가.


To be continued~ 이제 막바지! 아직 끝은 아님^^

2013년 5월 25일 토요일

[파리3일차-3] 마음 가는 대로, 오감이 느끼는 대로


-6일차 여행기-
12.8.31 오후~밤: 몽마르트르 언덕,
샹젤리제/루브르/세느강 주변 야경


#1
‘시골 마을’ 분위기가 남아 있던 몽마르트르 언덕

이번
여정지는 파리 북쪽에 위치한 몽마르트르 언덕. 피카소, 고흐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머물며 작품 활동을 한 곳으로도 유명한 곳. 남은 오후 시간,
해가 떨어질 때까지 여기서 여유와 낭만을 좇을 예정이다.


언덕은
지하철 아베쎄(Abbesses)역에서 가깝다. 내리자마자 나를 맞는 거리의 음악가. 멜로디가 좋아 잠시 앉았다.


언덕에
오르기 시작. 정상에 위치한 사크레쾨르 성당이 저 위에 보인다. 파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성당이라고 한다. 또한 몽마르트르 자체가
파리에서 제일 높은 지역이라고 해서, 올라가는 게 벅찰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웬걸, 조금 오르니 바로 정상이네? 10분이나 걸었을까?
서울의 어지간한 달동네에 오르는 것 보다도 수월한 느낌이었다. 파리는 산이 없는 평지로 이뤄진 도시라는 걸 실감케 하는
순간.

언덕
정상, 사크레쾨르 성당에 올라 파리 시내를 내려다봤다. 실제로 어디 하나 움푹 파이거나 불쑥 돌출한 곳 없이 잔잔한 평지로만 이뤄진 도시였다.
이 큰 도시가 어쩜 이렇게 평탄할까? 날씨는 좀 흐렸지만, 언덕에서 파리 시내를 내려보는 광경은 절경이더라. 확 트인 전경만큼 마음도 시원하게
열렸다.



언덕
위에도 역시 거리의 음악가들이 나를 맞았다. 은은한 선율이 나를 끌어당겼다. 그들 앞에 걸터 앉았다. 감미로운 음악, 적당히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 한 눈에 들어오는 파리 시내가 자아내는 오밀조밀한 절경, 그 순간 가슴 속으로 전해지는 여유로움의 범람.


순간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밀려왔다. 음악을 들으며, 수첩을 꺼내 들고 적어 내려갔다.

'이번 여행, 너무 좋았다. 런던과 파리, 물론 '의미'를 부여해도 한도 끝도 없이 좋은 곳이지만, 꼭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보고/듣고/걷기만 해도 그냥 좋은 시간들이었다. 언제부턴가, '의미'를 부여하길 습관적으로 해왔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 대해서도 '괜한 유럽에 대한 로망이 아닐까?'란 의문에 대해 생각 정리를 해보려 하기도 했지만, 지금 순간 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다. 마음이 가는 대로, 오감이 느끼는 대로 그저 너무 좋았던 시간들이었다.'(몽마르트르에서 거리 음악가의 공연을 들으며
적음)

몽마르트르는
과거 수세기 동안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다고 한다. 오늘날 개발과 상업화가 진행됐다고는 해도, 그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정답게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길, 아기자기한 집들, 아직도 보이는 풍차, 푸르른 숲과 밭 등등. 도처에서 발길을 붙잡고 머물다 가라는 듯한 잔잔한 유혹이 끊이질
않는다. 그 풍경을 사진에 담아뒀다. 해질 무렵의 몽마르트르, 굽이굽이 골목 풍경 위주로^^










몽마르트르
역시 파리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내 취향 같아서는 하루 종일 느릿느릿 머물고, 예술가들이 머물던 유서 깊은 건물들도
천천히 둘러보며 음미하고 싶은 곳. 그러나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제 곧 마감. 해가 지고 있다. 서너 시간 정도 둘러본 것 같은데, 아쉬운
느낌이 밀려왔다. 이거 뭐 어딜 가든 아쉬움 투성이군. 파리는 한 달 정도 머무르며 둘러보고 사색해도 전혀 지루할 것 같지 않은 느낌? 여하튼
여운으로 남겨두고, 다음에 인연이 있음 또 오도록 하자.



#2.
마지막 밤, 파리의 야경


마지막
날의 밤이 찾아왔다. 세느강은 ‘세월아 네월아’ 천천히 흘러가는 듯 보이는데, 나의 파리 생활은 쏜살보다 더 빨리 지내가 버렸다. 아쉬움과
섭섭함에 감상에 젖어드는 밤.


아베쎄역에서
콩코르드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왔다. 목적지는 루브르 박물관인데, 나의 발길은 반대편인 샹젤리제 거리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파리의 느낌을 강하게
안겨준 곳, 밤의 샹젤리제를 보고 싶었다. 우뚝 솟은 오벨리스크 탑 앞에 서서, 저 멀리 개선문이 보이는 쭉 뻗은 거리 풍경을 한동안
음미했다. 


마침
환한 보름달이 하늘에 떴다. 콩코르드 광장을 지나, 어둠이 짙게 내린 튀를리 공원을 가로질러, 달빛에 의지한 채 루브르 박물관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다.


원래
계획은 민박집에서 만난 형과 함께 루브르 박물관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오늘은 야간 개장을 하는 날이었다. 낮에는 각자 돌아가니다가 이른 저녁에
만나 루브르를 보려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계획이 틀어졌다. 낮에 갔던 생제르맹 지구와 몽마르트르 언덕이 너무 좋은 나머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머물다 보니 시간이 계속 지체됐다. 루브르에 오니 거의 밤 9시가 다됐다. 결국 이번 여행에서는 루브르, 오르세 등 유명 박물관은
하나도 못 갔구나. 대신, 평범한 일상의 공간에 꽂혀 골목 골목 많이 걸어 다녔으니, 그걸로 만족해야지. 여하튼 3~4일 만으로 파리를 충분히
둘러보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계획이란 걸 현지에서 깨달았다.



루브르의
유리 피라미드 앞에서 형과 만났다. 별다른 목적 없이 우리는 그냥 걸었다. 박물관 주변과 그 바로 앞의 세느강의 야경을 바라보면서. 달빛이
은은히 비추는 파리의 밤 풍경은 아름다웠다.




2013년 5월 19일 일요일

[파리3일차-2] "자유를 위한 길에서 만납시다"

-6일차 여행기-
12.8.31 오후: 생제르맹 지구 골목,거리 등, 카페 드 플로르

#1
자연스레 만나는 골목길의 정취, 개방된 성문화 엿본 한 서점



비스트로에서의
맛난 점심을 마친 후, 다시 여정 시작. 식당을 나오자마자 펼쳐진, 곡선으로 구부러진 정겨운 골목 풍경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길 이름도
적어놨는데 ‘Des grands augstins’였다. 원래의 행선로를 벗어나, 그 길을 따라 걸었다. 몇 백미터 걷다가 다시 식당 앞으로
돌아왔다. 아무 것도 한 건 없이 그냥 걸었다. 파리의 골목길을 걷는 기분, 참으로 평온했다.
 


나는
지금 파리의 상징이자 일상의 공간인 카페, 그 중에서도 유명한 ‘카페 드 플로르'를 향하고 있다. 즉, 점심식사를 한 오데옹역 부근에서 카페가
있는 생제르망 대로(boulevard St Germain)로 향하는 발걸음.  가는 도중 계속해서 나타나는 골목길의 자연스런 곡선의 미가
끊임없이 내 눈을 사로잡는다. 이런 ‘이름 없는' 일상의 골목들이 나를 설레게 한다. 갈 길 바쁜데 왜 자꾸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거니~



‘Rue
St Andre-des-Arts’란 거리로 들어서니, 갤러리, 서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중 사진, 미술, 디자인 등 아트북 샾으로 보이는
곳이 눈길을 끌어 들어갔다. 그 중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하는 선정적(?)인 것들이 시선을 확 사로잡았는데, 아뿔사, 남녀의 나체가 마구,
적나라하게 노출한 작품들이 사방에 퍼져있는 게 아닌가. 그냥 벗은 정도가 아니라, 중요 부분(?)까지 민망할 정도로 드러내고 표현한 작품들.
무슨 의미일까? 솔직히 잘 모르겠더라. 단순히 자극적인 야한 사진은 아닌 듯 보였고, 뭔가 표현하고 있는 것 같긴
했는데...


분명
불법 음란물은 아닐 터였다. 시내 한 가운데에 버젓이 위치한 아트샵에서 판매되고 있는 것들이니 말이다. ‘19금’ 이런 표시도 없어 보였고,
미성년자들도 서스름 없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이었다. 문득, 줄리델피가 주연하고 감독까지 맡은 영화 <뉴욕에서 온 남자, 파리에서 온
여자>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파리녀'인
줄리델피가 남친 ‘뉴욕남'의 알몸 사진을 부모님께 자연스레 보여줬는데, 그 사실은 안 남친이 소스라지게 놀라던 표정. 개방적인 성 문화에 익숙한
프랑스인과, 그와 다른 미국인의 차이를 보여주려는 장면이었다. 영화에서는 이외에도, 파리의 갤러리에서 성을 주제로 한 작품을 자연스레 감상하는
프랑스 가족들과 놀라는 ‘뉴욕남'의 모습을 대비해 비추곤 한다. 성적으로 자유로운 프랑스와 이에 불편한 미국 남친의 모습을 통해, 두 사회의
모습을 문화적으로 비교해나간다.    


여하튼
이 민망한 것들(한국사람 기준으로)을 보고 있어도 전혀 눈치 볼 것 없고, 그냥 일반적인 책을 둘러보듯 보고 있는 파리지앵들. 강하게 문화충격을
느낀 순간이었다.


#2
‘카페 드 플로르의 메뉴판’에는.. “자유를 위한 길에서 만납시다"

걷다
보니,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카페 발견. 내가 찾던 카페 드 플로르(Cafe de Flore)였다. 이 곳은 수 많은 예술가, 문인, 철학자,
정치인들이 드나들며 글을 쓰고 작품을 구상하고 시대를 논하던 장소였다고.




남자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았다. 메뉴판을 보니 가장 먼저 보이던 문구.


"Les chemins de la
liberte"(J.P.Sartre)
-자유를
위한 길에서 만납시다. 장 폴 사르트르-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인 지성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을 적어놓았다. 그는 소박한 카페에 앉아 먹고 일하며 작품을 쓰곤 했던 ‘카페의 철학자'였다고 한다. 한
다큐멘터리에서 이 문구를 본 적이 있는데, 인상적이었다. 스스로 자기를 형성해나가려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가로막고, 자발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부자유'한 세상에서, ‘자유'란 말은 여전히, 어쩌면 영원한 진보의 표상이다. 메뉴판에까지 철학이 깃든 카페라. 나중에 파리에 가면 꼭
가보리란 생각을 했었다.





메뉴판에서
진짜 메뉴를 본 순간, 약간은 실망했다. 가격이 꽤 비쌌다. 지난 번에 갔던 비포선셋의 ‘르 푸어 카페'보다 약 1.5배 이상 비싼
느낌이었다(카페오레가 여기는 5.5유로, 르푸어는 3.5유로 정도). 옛날, 부담 없이 드나들며 글을 쓰던 가난한 문인들이 지금의 상황을 보면
슬퍼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워낙 유명 명소가 된 지라, 관광객 등으로 북적북적대는 모습이었다. 


원래
계획은 카페에 앉아 느긋하게 사색하며 짧은 글을 하나 써보려 했는데, 그런 분위기는 나질 않았다. 그래도 먹을 건 먹어야지! 이번에도
카페오레에, 아까 많이 걸었더니 배가 고파서 ‘케이크'라 적인 사이드 메뉴를 골랐다. 나온 걸 보니 ‘파운드 케이크’ 같은 거였다. 파리의
카페오레(라떼랑 비슷)는 어딜 가든 맛이 깊고 좋았다. 두 개 시켰는데, 12유로 정도가 나왔네 그려.


가지 또 인상적이었던 건, ‘서빙'하는 일꾼들이 죄다 남자들이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보통 이런 일은 여성들이 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우리 처럼 대부분 젊은이들의 아르바이트로 채워지는 모습은 아니었고, 경험 있어 보이는 중후한 남성들이 복장부터 상당히 품위를 갖추고
‘정식 스텝'으로서 일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프랑스에서는 여성이 웨이터를 하는 게 관례상 부자연스럽다고
하더라. 

카페를
나와, 생제르망 대로, 보자르 거리 부근을 잠시 하염 없이 걸었다. 근방에 국립 미술 학교 등이 있어서 그런지 미술 갤러리들이 참 많았다.
백년도 넘은 세월을 듬뿍 간직하고 있음직한 골동품 샾도 도처에 보였다. 은은히 느껴지는 파리의 정취, 시간아 나몰라라 하며 느릿느릿 걸어다니고
싶은데... 빠뜨릴 수 없는 다음 여정지로 가야하니, 아쉬울 뿐!

to be
continued~

출처 : 사진과여행 공간
글쓴이 : 럭키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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