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네팔 배낭여행 [08.01.06-08.01.29 (24일간)]
여행의 참고 : 인도네팔 100배 즐기기, 인터넷카페(인도방랑기)
읽은 책 : 인도에 카레는 없다. 내가만난 인도인, 인도의 역사, 지구별 여행자 등.
인천-델리-자이푸르-우다이푸르-아메다바드-뭄바이-아우랑가바드-엘로라-아잔타-부사발-아그라-잔시-오차-카주라호-사트나-바라나시-고락푸르-룸비니-포카라-카투만두-인천
[여행의 개념도]
다른 내용은 가이드북에 다 나와 있어 느낀점과 에피소드 위주로 썼습니다. 여행에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비행기만 허락한다면 개인적으로 더 좋은 코스는 뭄바이 in, 카투만두 out 하는 것이겠지.
인천-뭄바이-아우랑가바드-엘로라-아잔타-우다이푸르 -자이푸르 -델리-아그라-잔시-오차-카주라호-사트나-바라나시-고락푸르-룸비니-포카라-카투만두-인천
여기에 같이 여행하신 사진작가이며 여행가이신 김내곤 선생님의 멋진 사진이 있습니다.
▣ 김내곤갤러리 ▣
[여행 소감]
인도 한번 가볼만 한 곳임은 틀림없지만 사람 살 곳은 못된다
(인도의 관광자원은 문화제도 많지만 "오염과 거지"도 한몫을 한다.)
여행이 그렇듯이 여행자체는 고생이지만 몇 달 전부터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이 즐거움의 연속이다. 배낭을 싸았다가 풀고 다시 싸고 무엇을 가져가야할까? 무엇을 보아야 할까? 어떻게 가야 할까? 또 인도의 사회 문화적 배경, 역사나 생활상 등을 이해하기 위하여 인도에 관한 인터넷을 검색하기도하고 인도에 관한 책을 읽기도 하면서 3개월 정도는 여행 중보다 여행을 더 만끽하면서 여행 전을 즐기게 된다.
인도를 여행하려면 간단한 역사와 신들을 알고 가면 여행에 많은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평소에 책을 잘 읽지 않는 나지만 몇 권 정도는 읽었다. 하지만 인도의 역사와 신들은 복잡하기에 간단한 이해만으로 출발한 것 같다.
자유배낭을 할까도 했으나 나이가 있고 해서 단체 배낭여행을 선택했다. 전번에도 지중해 여행에서 단체 배낭을 했을 때 많은 잇 점이 있었다. 길이 멀며 여러 곳을 돌아다녀야 하고, 잠자리가 편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은 저렴하고 기간을 길고 많은 곳을 스스로 체험하면서 숙소 걱정 없고 이동하는 데 가이드가 티켓 대행해주고, 여행의 방향을 알려주고 하니 너무 편리하기 때문에 단체 배낭은 우리 같은 여행자들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인도여행을 먼저 한 여행자들에게 ‘인도는 어떻고 어떻다’고 아주 많이 들어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도는 더럽다.’ ‘ 인도는 거지가 많다.’‘인도인들이 휴지를 사용하면 산에 나무가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등으로 말한다. 또 일부는 인도를 미화해서 ‘인도는 명상을 하는 명상가, 수행자 들이 많다.’ ‘인도가 나를 부른다.’ ‘인도의 매력에 빠졌다.’ ‘인도가 좋다’라고 들 말한다.
내가 읽은 어느 책에선가 ‘인도를 일주일 여행하면 책을 한 권 쓸 수 있고, 한달을 여행하면 멋진 글 한편을 쓸 수 있지만 몇 년을 여행하면 한 줄의 글을 쓰기가 망설여진다.’ 말과 같이 참 다양성의 나라임은 틀림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본 인도는 피상적이겠지만 모두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 같다. 이상한 연극 같기도 하고, 지저분함의 극치고, 어디가나 쓰레기더미 거지들이 우글거린다. 마약성분까지 있다고 하는 인도 씹는담배는 정말 혐오스럽다. 씹어서 한입 물고 있다가 침과 함께 뻘건 물을 길가 아무데나 뱉어내는 모습 정말 역겹고 바라나시 신성한 갠지스강(강가)의 오염 거지들, 문득 아 인도의 관광자원은 문화제도 많지만 큰 비중을 차지하는 관광자원이 오염과 거지도 한몫을 한다고 생각했다. . 사람들은 날씨 탓인지 게으르기 그지없어 보이고 내 짧은 생각으로는 얼마간의 수행자라는 사람들은 수행자인체 하는 거지이고 궤변가이지 결코 수행자가 아니라고 결론내리고 싶다. 다시 말해 실천은 없고 말만 많은 자들인 것 같다.(진짜 수행자는 못 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인도인의 모든 믿음은 돈으로 통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돈을 숭배하는 것인지 신을 숭배하는 것인지? 거지만 돈 달라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돈을 향해 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모두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인도를 긍정적으로 보기는 힘들다. 내 독설로는 인도가 좋다는 사람들은 ‘쓰레기, 거지, 소똥, 개똥, 사기, 협잡, 무질서, 가난 속에서 인도에 살아라.’라고 말하고 싶다.
사기, 속임수, 절도, 협잡, 사기 등이 모두 위선이 아니라 살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배고프면 훔치고 구걸하고 체면과 충동을 억누르지 않은 본능에 충실한 진실 된 행위라고, 마음과 몸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가식이 아니고 원시적인 진실 된 삶이라고 괴변을 늘어놓아도 나는 아니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인도를 일찍 섭렵한 사람들은 흥분과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먼저 인도를 본 사람으로서 자부심으로 무용담을 쓰다보니 인도 문화 그 차체를 흥미롭게 보았을 것이지만 정말 인도가 좋을까에 대해선 아무리 설득해도 나는 아니다. 그러나 언젠가 또 가고 싶은 충동이 생길지는 장담할 수 없다.
인도는 영원한 세계인의 구경거리일 것이니 한번은 가서 느껴 볼만한 곳임은 틀림없다.
인도 길거리에서 가끔 본 다음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life is celebration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축제다.
귀국하자마자 오래간만에 삼겹살에 소주를 먹고 컴퓨터 앞에서 여행담을 정리하려고 하니 이게 왠일일까? 배가 아파오기 시작하더니 복통에 설사까지 하기 시작하더니 완전히 탈진상태에 이르러서 병원에서 영양 주사를 맞으라는 것을 마다하고 집으로 돌아 왔으나 쉽게 가라않지 않았다. 하루 반을 꼬박 누워 있었다. 정말 이러다가 죽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심각하게 아프고 힘이 하나도 없다. 여행 중 이교수님의 부부가 복통에 설사를 앓느라고 반은 죽음 상태가 되셨던 것이 이해가 된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번 여행에서 절실히 깨달은 것은 나이도 있으니 너무 무리하지 말며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인데, 그것도 감기와 복통설사약을 필수 인데 좀 강하게 지어갈 필요가 있다고 느꼈고 갑자기 이런 시나리오가 생각났다.
인도에서 가장 많이 쓴 영어표현 1-물건흥정
어법은 내맘대로
A : How much is it?
B : How much (do) you(want to) pay?
A : 100 rupi?
B : no , no, it's 200 rupi
A : no. 100 is reasonable price.
B : no, no 150 rupi last price,
A : ok, I will buy
B : ok ok ok 150 rupi, you happy? me happy!
인도에서 가장 많이 쓴 영어표현2- 릭샤, 택시흥정
A : I am going train station. how much?
B : 100 rupi
A : no , no, it's 50 rupi. OK?
B : no no no 80 rupi. no ploblem.
A : ok ok I will, 80rupi But
my 릭샤 and my friend 릭샤 same time start and going togather
and same time and same place get there OK?
B : ok ok ok, you happy? me happy
우리 부부의 한 25년 후(약 80세) (임종을 앞두고 있다.)
영감 : 여보 할멈! 우리가 외국 여행한 것 중 2008년 인도여행이 제일 힘들었지?
그것도 아그라에서 잔시로 가는 야간열차 말이야!
할멈 : 아니예요. 영감! 힘들었지만 그래도 당신이 내 곁에 있어 좋았지요.(영감은 눈을 감는다.)
[여행 중 기차에서 만나 터번을 씌어준 친구들]
◦ 좋은 친구들 사귀고, 길에서 처음 소를 보고 이상한나라를 느끼다.
◦ 오늘은 하루가 27.5시간이다.
밤잠을 설치고 새벽 5시도 채 안되어 눈을 떴다. 11시가 인천공항의 미팅시간이다. 청주에서 3시간이 걸리던 인천공항까지의 리무진이 김포공항을 경유하지 않아 2시간 만에 인천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11시가 되어 배낭 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전에 보면 우리 부부가 나이가 가장 많은 편에 속해있었고 대부분 2, 3십대 아니면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50대 실버 부부가 4쌍에다 40대 부부와 싱글 들도 있고 연령층이 꽤 높다는 것을 알고 놀라움 반 안심 반이었다.
나는 여행의 목적을 많이 보는 것으로 국한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많은 것을 보기보다는 느끼는 여행, 좋은 사람들을 사귀는 것, 현지인들과의 문화체험, 외국인들과 만나 못하는 영어로 서로 사람을 사귀는 것을 많이 보는 것보다 우위에 두고 싶다. 나는 인천에서 온 몇 년 연배이지만 젊어보이시는 성질이 좀 급하신 김사장님과 사모님, 틈틈이 세계 역사와 정세, 경제와 사회 문화, 다방면에 걸친 강의로 여행의 재미를 배가시키고 인도인에 대한 솔직한 견해를 말씀해 주시는 제주대학교 이교수님 부부, 탐험가의 기질이 있으신 포항의 이기태 선생님, 등산과 사진에 일가견이 있는 멋쟁이 김내곤선생님 부부 정말 금슬이 좋으신 부부들이다. 양선생님, 아들 같으면서 바르게 행동하는 재열이 특히 우리를 아무 일 없이 여행의 길잡이며 지도자를 맡은 어리면서도 씩씩하기 그지없는 별명이 잔다르크인 은정이를 알게 된 것 만으로도 이번 여행에서 더 없는 즐거움이었으며 큰 소득이었다.
13시 20분에 중국 남방항공으로 인천 공항을 출발 廣州(광조우)에서 환승을 하려고 내리니 막 일몰이 시작되고 있었다. 광저우 공항에서 환승을 하여 델리에 도착하니 델리의 시간은 우리 시간보다. 3시간 반이 느리다. 델리는 우리나라보다 지리상으로 서쪽에 있다. 세계 표준시는 경도가 15도 마다 1시간이 차이가 난다. 우리는 동경 135도를 표준시로 사용하고 있으니 델리는 우리나라보다. 52.5도가 서쪽에 있는 동경 82.5도를 표준시로 사용하고 있어 3시간 반이 느리다. 나에게 오늘 하루의 길이는 27시간 30분이 되는 셈이다. 보통 때보다 긴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귀국하는 날 다시 3시간 반을 반납할 것이다. 비행시간은 6시간 남짓 했지만 10시간 이상이 걸려 델리에 도착했다.
밤 10시경 델리에 도착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공항 내부도 대단한 공기오염으로 숨이 막힌다고 해야 올을 정도로 오염을 바로 실감하게 된다. 수화물을 찾고, 우선 조금의 돈을 환전하려고 공항환전소(bank of india)에서 환전 율이 안 좋다고 해서 50$만 환전을 하니 환율이 38.50으로 쓰여 있어 1925Rs를 받아야 하는데 1900Rs만 준다. 잔돈이 없다는 것이다. 국책은행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아니 한 술 더 뜨는 것은 10$과 20$ 작은 돈은 아예 환전을 귀찮다고 안 해주고 또 100$ 중 50$만 환전하고 50$은 거슬러 달라고 하니 그 것도 안 된다는 거다. 밤도 늦었고 맘대로 하라는 것이니 참 시작부터 이상한 나라에 온 것이 분명하다. 만약 이런 일이 우리 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 않는가.
대기하고 있던 버스를 탔다. 버스를 오르니 인도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하면서 인도인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꽃 금잔화 다발을 각자의 목에 걸어준다. 버스를 타고 가는 데 공기는 밤인데도 오염을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부옇다. 그리고 드디어 길바닥에 소가 돌아다니는 것을 보다.
▪ 대단한 오염에 싸인 도시 델리
▪ 거리는 혼돈 그 자체이고 지저분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안가 본 사람은 이해하기 힘들다.
▪ 지하철은 인도가 아니고 유럽에 와 있는 느낌이다.
[인디아게이트] [뭄바이대학시계탑]
오늘은 월요일이기 때문에 붉은성, 박물관등이 모두 휴관이다. 하지만 비슷한 곳은 여러 군데 있다하니, 하는 수 없이 빠하르간지(뉴델리역앞 여행자의 거리)로 릭샤를 타고 가서 하루를 보내야한다. 거리가 지저분하고 소똥, 개똥, 쓰레기 더미, 거지는 말할 것 없이 많다. 깔끔한 사람은 정말 견디기 힘 든다. 나같이 털털이도 참 힘든 여정이었다.
처음타보는 오토릭샤(오토바이엔진에 삼륜차, 동남아의 뚝뚝이)는 완전히 광란의 질주를 한다. 거리는 오토바이, 오토 릭샤, 사이클 릭샤, 자전거, 수많은 차들, 인간들의 물결 정말 인파(人波),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실감한다. 인도의 거리는 혼돈 그 자체이다. 게으른 것과 느린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은 인도인은 느긋하다고 할 것이다.
한참 걸어서 코넛플레이스로 갔다. 공원을 중심으로 방사형, 동심원을 따라 건물들을 계획해서 만든 도시이다. 그곳에서 영화촬영을 하는 것을 보고, 일행 중 작가 선생님 부부를 만났는데 같이 지하철이나 타보자고 한다. 코넛플레이스 역에서 인디아게이트가 가까운 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려고 지하철역에 들어서니 경찰들이 검문을 한다. 외국인들은 지하철을 타려면 항상 검문을 받고 몸수색과 가방을 수색한 다음 통과 시키면 절대 사진도 찍지 말란다. 모르고 사진을 한 장 찍었는데 따라와서 지우라고 하면서 지우는 것을 확인한다. 8Rs(200원)지하철을 타니 지하철은 인도가 아니고 유럽에 와 있는 느낌이다. 지하철도 깨끗하고 탄 사람들도 멀쑥하니 신사들이고 거지는 더 더군다나 없다.
역에서 내려 인디아 게이트까지는 한참을 가야한다. 인디아 게이트 앞길은 참 넓고 잘 정비되어있었지만 매연 때문에 시야가 100m이상이 보이지 않는다. 그 커다란 인디아 게이트를 가까이 가서야 인디아 게이트인지 알았다.
다시 오토릭샤를 타고 빠하르간지 여행자 거리에서 인도정통음식을 시켜먹었는데 음식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나는 아내가 시켜 주는 대로 먹었는데 처음이라 그런지 맛있게 먹었다.
▪ 인도의 고대 천문학이 발달했음을 느끼다.
▪ 열차의 필수품은 침낭이고, 단체 배낭은 외롭지 않아 좋다.
[잔타르만다르]고대천문대희망자 그룹을 만들어 핑크시티, 잔타르만다르 등을 구경하다.
영국왕세자를 환영한다고 해서 핑크빛으로 붉게 칠을 한 도시 핑크시티 등을 구경하다.
인도 서 북부 자이뿌르는 라자스탄의 주도이다. 가이드 은정씨가 인도사람들은 얼굴과 몸매의 윤곽이 뚜렷하고, 같은 키라도 다리가 우리나라사람에 비해 길어 앉은키는 우리나라 사람이 훨씬 크다고 말을 한다. 정말 그렇다는 것을 실감한다. 특히 라자스탄사람들이 더 예쁜 것 같다. 얼굴은 작고 눈이 크고 코가 오뚝하고 허리는 잘록하고 히프는 크고 갖출 것을 다 갖춘 미인들이 많다. 정말 아름다운 미녀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정말 변소에서 느낀 것이지만 소변기가 높고 자전거 바퀴가 크다. 실제의 키는 우리보다 크다고 볼 수 없는데 우리나라의 키 작은 사람은 인도 소변기에 소변을 보려면 까치발을 하고 소변을 보아야 할 것 같다.
잔타르만다르는 1700년대 만든 천문대인데 우리가 방문한날 2시 45분이었는데 대형 해시계는 정확하게 2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분까지 맞는 것을 보고 인도의 고대 천문학이 대단히 발달했음을 실감했다.
시티 팰리스 근처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맥주 생각이 나서 맥주를 시켰더니 자기는 술에 대한 허가증이 없어 몰래 사와야 한다고 하며, 커피 잔에 마시라고 한다. 가격은 무지하게 비싸게 받는다. 도대체 물가가 우리나라 몇 배 싼 나라에서 세 배의 가격(200Rs)으로 두병을 먹고 나니 그것도 가격을 올려 받기 위한 쇼인 것 같다. 나중에 알고 보니 보통 100Rs 에 먹을 수 있고 슈퍼에서 사면 60-70Rs이면 살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늘은 인도에서 처음 타는 기차다. 자이푸르에서 우다이푸르로 가야한다. 이번여행은 15일은 호텔에서 자고 8일은 기차에서 자고 1일은 비행기에서 밤을 보내게 된다. 기차는 sleeper 칸이지만 대단히 열악하다. 변소냄새와 지저분하다. 기차는 역마다 서고 낮에는 덥더니 밤에는 춥다. 만약 오리털 침낭을 안가지고 갔더라면 무척고생을 했을 것이다. 특히 아래층 창가에 세로로 된 좌석이 배정된다면 얼어 죽을 정도로 추었다고 할 것이다. 아니면 오리털 잠바 정도는 입고 기차를 타야 한다. 침낭은 추위를 타는 사람은 따뜻한 겨울용이 좋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옷을 입고 잔다면 얇은 침낭도 괜찮다. 나는 얇은 오리털 침낭을 가져갔는데 폴라텍 내의를 입고 잤더니 문제가 없었다.
와이어로 침낭을 묶고 잠을 청했으니 잠이 잘 오지 않아 동행인 이교수님, 김사장님과 함께 가져온 소주를 멸치와 함께 한잔하고 잠을 청했다. 기차안의 온도를 보니 25℃이상인데 무슨 침낭이냐고 하면서 침낭을 깔고 잤는데, 밤중이 되니 추어지기 시작하고 으스스 했다. 만약 침낭이 없었으면 많은 고생을 했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월 9일(4일차) 우다이프루 (시티팰리스 작쉬만디르 몬순팰리스)
▪ 돈 되는 것은 체면도 없이 구걸, 사기, 바가지, 협잡 등을 서슴없이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 그 걸 먹고살기 위한 최소한의 행위니 영악하지 않다고 해야할까?
[힐탑호텔 옥상]
아침에 우다이푸르에 도착했다. 휴양도시답게 호수가 보이는 멋진 경치가 보이는 힐탑 호텔이었다. 시티 팰리스 작디쉬만디르 모순팰리스등을 구경하다.
작디쉬만디르에서 힌두의식을 구경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인도의 대학생이라고 하면서 무료로 가이드를 해 준다고 하면서 열심히 설명을 해 준다. 끝날 때 고맙다고 20루피를 주었더니 고맙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상점을 운영하는 사람으로 우리가 지나가니까 아는 체 하면서 불러 자기 상점에서 물건을 사라고 한다.
저녁에는 럼주를 135루피에 한 병사서 몇 명이 나누어 마시고 맥주도 몇 병사가지고 라면 파티 겸 술파티를 했다. 가이드 은정양의 인도사와 인도문화에 대한 강의도 듣고, 여행 동료들의 인생관 정치관 결혼관등 다양한 소재로 자정이 넘도록 토론을 한 것 같다. 혼자 여행을 즐긴다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단체 배낭은 외롭지 않아 좋다.
인도에 오면 바가지는 기본이고 도둑질도 죄의식 없이 하는 것 같고, 힌두교 자체가 착하고 거짓말을 하지 말고, 남을 사랑하라는 등의 기독교나 불교의 가르침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돈 되는 것은 체면도 없이 구걸, 사기, 바가지 등을 서슴없이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걸 ‘먹고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므로 순진하다.’ ‘영악하지 않다.’ 라고 말 할 수 있을까?
▪ 인도 배낭여행 중 가장 힘든 것은 기차 타는 것이며, 기차를 타는 것은 야간 전투다.
▪ 인도인의 오른 손은 신성하다.
오전에 휴식을 하고 오후에 민속촌과 몬순팰리스를 구경하고 일몰을 본다는 것이 늦어서 못보고 내려왔다. 오늘은 또 야간열차를 타야한다. 여행 중 가장 힘든 것이 야간열차 타는 것이다. 연착은 으레 있는 것이다. 한 칸에 8개의 침대가 있다. 3층으로 가로로 되어있고 2개는 창 쪽으로 2층으로 되어있는데 아무나 지나다닌다. 더욱 더 한 것은 둘이 자는 데 사이통로에 일반석티켓을 사가지고 오는지 몰라도 통로에 자리를 펴고 자려고 해서 다른 데로 보냈더니 자다보니 또 한사람이 통로에서 자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셋이서 잦다. sleeper class라고 하지만 이건 침대차 타는 것이 아니다. 야간열차 이동을 우리는 야간 전투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기차는 열악하고 힘들다. 유럽처럼 좋은 기차가 아니기 때문이다. 냄새도 나고 배낭도 철저히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 아침 무렵에는 많은 사람들이 철길에 또는 밭뚝에 앉아서 오른손에는 물병을 들고 큰일을 보고 있다. 얼굴이나 안보이면 좋겠느데 얼굴은 하나같이 기차를 처다보고 볼일을 보고 있다. 남자들이라 고추가 다보인다. 볼일을 본다음 물로 닦느다. 물론 왼손으로 사용해서 닦는다. 인도인들의 왼손은 굿은일을 하는데 쓰인다. 하지만 오른손은 신성하여 맨손으로 밥을 때 쓰인다. 식당에서 우유를 시켰는데 웨이터가 우유를 가져왔다. 우유가 더운것이냐고 물어 봤더니 오른쪽 손가락을 우유컵에 넣어 저어 보더니 더운 것이라고 하더래요. 정말 인도인의 오른쪽 손가락은 신성하다.
▪ 미터기를 사용하면 정당한 가격에 오토릭샤나 택시를 이용하리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 점심은 간디 박물관 앞에서 먹었는데 값도 괜찮고 음식도 좋았다. 권하고 싶다.
새벽 4시경에 아우랑 가바드역에 도착 기다렸다가 오토릭샤를 탔는데 미터기를 돌린다더니 좀 엉터리다. 대표 한명만 미터기를 돌리는 데 그 대표는 미터기를 잘 조작하는 사람인 것 같다. 절대 100루피가 나오지 않을 거리인데 100루피라고 하면서 모두 100루피씩 내란다. 가이드가 항의해서 결국은 50루피로 해결했지만…
미터기를 사용하면 정당한 가격에 오토릭샤나 택시를 이용하리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빙빙 돌아서가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미터기 조작이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직물박물관이 유명하다고 해서 박물관으로 갔더니 오전 15명, 오후 15명만 관람이 가능하다고 하니 구경하기 참 어렵고, 무슨 모스크인가는 여자들은 못 들어간다고 하니 모두 포기하는 수밖엔 없었다.
그래서 간디 박물관에 갔더니 12, 3세 정도 되는 아이들 두 그룹이 소풍을 왔는데, 우리가 보기에도 현저히 다르다. 한 그룹은 얼굴이 대단히 밝고 기름이 흐르고 깨끗하고, 한 그룹은 검고, 남루해 보였다. 내가 짐작컨대 한 그룹은 높은 계급이던지 아니면 잘사는 집 아이들이고 한 그룹은 가난한 집 아이들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우리 같은 외국인이 신기한 모양으로 모두 나를 둘러싸고 모여 든다. 모두 합창으로 where are you from? 한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한국을 아는 것 같이 얘기하고, 몇 살이냐고 물었더니 13이라고 한다.
점심은 간디 박물관 앞에서 먹었는데 값도 괜찮고 음식도 좋았다. 권하고 싶다.
오늘저녁 다시 기차로 뭄바이로 간다.
▪ 외국인이 잘못한 것은 더욱 용서하지 않는다. 돈이 되니까.
▪ 지폐 10루피를 동전 9루피와 바꾸어 주는 장사도 있다.
▪ 인도에서 적선의 개념은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한다.
뭄바이는 인도의 옛 수도로 몇 천만 명이 모여 사는 도시라고 한다. 역시 오염은 심각하다. 짐을 풀고 세계 문화 유산인 CST역까지 걸어서 가 구경을 하고 이튼 날 세계에서 가장 큰 빨래터 도비가트를 구경했다. 도비가트에서 빨래는 정말 대단하다. 빨래터 안을 들어가 보니 빨래 감의 한쪽을 잡고 보리 타작하듯 휘둘러서 물탱크에 두들기면서 빤다. 하지만 그런 더러운 물에 빨래가 된다니, 우리가 덮고 자는 호텔의 시트등도 그곳에서 빨래를 한다니 께름직하다. 빨래터가 복잡해서 들어갔다가 나오느라고 애먹었다.
마린 코스트를 갈려고 도비가트역에서 뭄바이 전철을 탔다. 요금은 4루피 내리는 마린코스트 역에 내리니,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역 대합실이 아니라 그냥 밖이다. 내리자마자 동네와 그냥 연결되어있다. 기차표를 사지 않아도 타고 내릴 수 있다. 그래서 돌아 올 때는 표를 구입하지 않고 타면 어떨까하여 걸리면 벌금 물지 하면서 만용을 부려 보았는데 우리는 운 좋게 무사히 돌아왔다. 어떻게 된 것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걸리면 크게 벌금을 무는 것인가 보다.
우리 일행 중에 보통표를 사가지고 모르고 1등석자리에 앉았는데 벌금을 내라고 해서 모르고 그랬다고 해도 막 무가네로 수갑을 채우려고 하는 등 겁을 주어 수십 배의 벌금을 냈다고 한다. 그들은 외국인은 돈이 많으니 무조건 돈을 받고 보자는 심산으로 그러는 것 같다.
하지알리 무덤을 가는 방파제 길은 대단하다. 사람들에 떠밀려 갈 정도로 이슬람 참배객들이 많았으며, 그보다도 길가에 걸인들이다. 어림잡아 100명의 구걸 자가 있는 것 같다. 인도에서 흔한 것은 거지이지만 여기는 주로 팔과 다리가 없는 장애인들이 땡볕에 5-6명씩 작은 원을 그리면서 무슨 노래인지 합창으로 절규를 하지만 던져진 돈은 1루피 짜리 열 댓개 정도 10루피 지폐 몇 장 정도가 고작이다. (공연(?) 하는 수고에 비해 너무 수입이 적은 것 같다.) 입구에는 적선을 하라고 지폐 10루피를 동전9루피를 바꾸어 주는 장사도 있다. 10루피는 한번 밖에 적선을 못하지만 동전 9루피는 9번의 적선을 여러 사람에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적선의 개념은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한다. 받는 사람은 주는 사람에게 선을 베풀 기회를 제공해 준 것이고 선을 많이 쌓게 되면 죽어서 환생할 때 더욱 바람직한 사람으로 때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1월 13일(8일차) 뭄바이-엘리펀트섬, 타지마할 호텔
게이트 오브 인디아 타즈마할 호텔은 엘리펀트섬을 가는 뱃전에 있어 쉽게 볼 수 있었다. 엘리펀트섬은 석굴사원으로 되어있다. 오후에는 뭄바이 대학을 둘러보고 대학생들의 생활을 엿보고 싶었는데 고풍스런 분위기는 일품이지만 학생들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지금은 그 건물에서 강의를 하지 않는지 낡은 지프차가 한쪽에 방치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오랜 동안 일부 건물을 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늘 밤에는 석굴군들이 있는 아우랑가비드행 열차를 탄다.
1월 14일(9일차):아우랑가바드(따울라따바드 고성군, 엘로라, 아잔타 석굴군)
▪ 아우랑가바드는 아잔타 엘로라의 석굴군을 가기위한 관문도시이다.
아우랑가바드는 아잔타 엘로라의 석굴군을 가기위한 관문도시이다. 아우랑제브 황제가 즉위하여 통치한 후, 아우랑가비드에 장시간 머물어 아우랑가바드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고 한다. 타울라따바드 고성군을 탐방할 때는 손전등이 필수이고, 동굴에는 박쥐 떼를 볼 수 있다.
세계문화유산이며 불교, 힌두교, 자인교 유적이 혼재해 있는 엘로라 석굴군을 가는 길에는 돌산이 층을 이루는 모양이 인상적이다. 현무암질의 거대한 바위산이 있었으니 석굴을 만들 수 있었구나하고 느껴지기도 한다.
엘로라 석굴군 중 최고의 볼거리인 카알라쉬 사원은 정말 웅장하여 다른 곳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100배에서 꼭 가보라고 권장하는 곳만 구경했다. 저녁때 카알라쉬 사원 뒷산에서 일몰을 감상했다.
▪ 벽화들이 훼손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 기차에서 인도인의 상징 터번을 써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아잔타 석굴사원군운 불교 미술의 보고이자 인도 회화의 금자탑이라고 평가받는 곳답게 석굴도 석굴이지만 불교에 관한 벽화가 생생하고 아름답게 많이 그려져 있다. 엘로라 석굴군과 함께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할 정도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하지만 제대로 보존하지 못해 벽화들이 훼손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내가 보기엔 아잔타 석굴군은 자리도 참 잘 잡은 것 같다. 우리나라로 말한다면 좌청룡 우백호(左靑龍 右白虎)쯤 되는 것 같다. 앞에 시내가 석굴군을 감싸 흐르고 전망대가 있는 앞산이 알맞게 높고, 양지바르고 참 자리를 기차게 잡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1100여년간 사람도 짐승의 흔적이 없이 발견되지 않아 먼지 속에 잘 보존 되었었는데 사람이 발견하고부터 어설피 보존한다는 것이 오히려 훼손을 하고 있다고 한다.
또 열차이동을 위하여 전용차량을 타고 부사발 역으로 간다. 가는 도중에 유채꽃이 만발을 했다. 유채 밭이 제주도는 새발에 피다. 가도 가도 끝없는 유채 밭이다. 인도 사람들의 식용유가 유채기름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확인해보지는 못했다. 가끔 소들을 무리지어 기르는 곳을 볼 수 있는데 이들은 힌두가 아닌 사람들로서 소를 식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
부사발에서 아그라로 가는 열차에서 터번을 쓴 시크교도들이 몇 명 앞좌석에 있어, 호기심에 비행기 담요를 가지고가서 터번 매는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내 머리에 터번을 매준다. 내모양이 우스웠는지 많은 사람들이 박장대소 웃는다. 머리는 큰데 터번은 했으니 우습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여 같이 찍고는 열차 선반위에 곱게 벗어놓은 진짜 자기들의 터번을 한 번 써보라며 보라색 터번을 씌워 준다. 내가 장난삼아 터번을 쓰고 피리를 불고 모금한 20루피 정도를 자기들의 아이에게 준다고 했더니 받지 않았다. 그 사람들은 다른 인도인들과는 달리 깨끗했고 예의 발랐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점이 시크 교도는 힌두교도와 다른 점일까? 생각해 본다.
▪ 어드벤스 페이(선금)란 무조건 떼어먹는 돈이라고 들었다. 모든 돈은 끝났을 때 준다.
▪ 온갖 위험한 체험은 다 해 본 다음 마지막으로 죽고 싶으면 인도에서 운전을 해보라
드디어 인도의 상징인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에 입성했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내일 타지마할과 아그라성을 구경하기로 하고 오늘은 아그라 근교에 있는 세계문화유산인 파테뿌르 시크리를 가보기로 했다.
아그라는 릭샤왈라들의 악랄함으로도 유명하다. ‘왈라’라 함은 ‘꾼, 또는 사람, 운전사란 뜻을 가진 말인데 사이클릭샤 왈라(운전사), 오토릭샤 왈라(운전사), 택시 왈라(운전사), 도비 완라(빨래하는 사람), 나는 인도에서 태어났으면, teach 왈라(가르치는 사람)이라고 부를 것이다.
파테뿌르 시크리를 가려고 호텔에 택시를 물어보니 1200루피라고 해서 너무 비싸다는 생각에 길에서 잡으면 더 싸다고 해서 길가로 나갔는데, 오토릭샤 왈라가 따라 붙는다. 왕복 500루피에 가자고한다. 도대체 30km가 넘는 곳을 아무리 싸도 오토릭샤는 무리다. 택시가 있는 맥도날드 가게 앞에서 택시와 흥정을 하려하니 아까 본 릭샤왈라가 와서는 800루피씩 에 두 대를 하자고 한다. 인상부터가 칼자국에 진상이다. 그래서 750에 흥정을 마치고 기다렸더니 두 대가 왔다. 한대는 내가 선탑하고 한대는 이교수가 탔다. 출발을 하려니 삐끼역할을 한 릭샤왈라가 어드벤스페이(선금)로 500루피를 달란다.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거절하고 출발했다. 어드벤스 페이란 무조건 떼어먹는 돈이라고 들었다. 모든 탈 것은 내려서 돈을 주지 않으면 미리 준 것은 딱 잡아떼든지 어떤 핑계를 대든 받을 수 없는 돈이라고 한다.
또 한번 수작을 건다. 가는 도중에 주유소를 들렸다. 거기에서 두 대가 기름을 넣는다. 내가 단호히 거절을 한 것을 알고는 옆 차의 이 교수께 기름값이 없으니 기름값으로 1000루피를 달란다고 한다. 이교수가 보니까 기름을 겨우 4리터를 넣더라는 거다. 우습지 않은가? 겨우 4리터를 넣고 1000루피를 미리 달라니. 밑을 수만 있다면 택시 두 대의 값이 1500루피라 1000루피를 주어도 괜찮지만 절대 믿어선 안 된다네. 우리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단호히 거절을 했더니 출발을 한다.
말을 안 들으니 화가 났는지라 막 난폭운전이 시작된다. 인도에서 난폭운전은 보통이라고 하지만 편도 1차선인데 양쪽에서 거의 동시에 추월이 들어온다. 완전이 곡예운전이 아니라 이건 죽고 싶어 환장을 한 운전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누가 말 했던가 ‘모든 위험한 체험은 다 해 본 다음 마지막으로 죽고 싶으면 인도에서 운전을 해보라’고 정말 운전석 옆에 탄 나는 앞차가 내 얼굴을 스쳐가는 것 같다. 겁에 질려 눈을 감아버린다. 그 것도 한 두번이 아니고 연달아 계속된다. 조수석에 타서 브레이크를 얼마나 밟았던지 다리가 다 뻐근하다. 다시는 인도에서 택시를 타지 않으리라 마음먹는다. 느려도 사이클릭샤를 타야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빠테쁘르 시크리에 더 갈 수 있는 데도 멀리서 내려놓고는 또 장난을 한다. 가이드를 쓰라는 등 괴롭힌다. 화가 나서 소리를 냅대 질렀다. 이제까지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지는 사람이며 인도사람은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는 등 인도를 좋게 본 사람들의 말을 들었는데 그게 아니다. 있는 힘을 다해 고함을 질렀다. 귀찮게 하지 말라고.… 오히려 효과가 나타났다. 그 다음은 더 이상 괴롭히는 일이 없었다. 오는 길에는 조용히 아무 일 없이 순순히 왔으니 소리도 한번 질러볼만 하다.
그래도 내릴 때 50루피를 팁으로 800루피씩 주었다. 호텔에서 예약한 사람들은 1200루피였으니 고생은 했지만 그래도 싼 편이었다.
맥주가 먹고 싶어 택시운전사에게 맥주를 사로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맥주 한 병에 70루피라고 해서 10병을 사오면 수고비 100루피를 더해서 800루피를 준다고 했다. 사 가지고 와서는 딴소리를 한다. 90루피에 사왔으니 자기가 손해 보았다면서 울먹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맥주 두 병을 자기가 가져가야 한다고 해서 그럼 이제껏 계약을 무효로 한다고 했더니 그냥 놓고 가더란다. 알고 보니 맥주가게가 멀지 않은 호텔 옆에 있었다. 가이드 은정씨가 60루피씩에 10병을 사왔다고 한다. 거짓말도 연극도 기가 막힌다. 수고한 것도 없이 인도에서 정말 큰돈인 200루피를 남아 먹고도 또 거짓말을 하다니!!!
▪ “딴소리 말고 살아 있을 때나 내게 더 잘해요” 했다.
▪ 오늘 구경거리는 인도의 상징인 타지마할과 아그라포트다.
무굴제국의 황제 샤자한이 그의 아내에 바친 무덤이다. 말로서 설명할 수 없는 장엄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아내 사랑은 대단했다는 생각은 들지만 한 여자의 무덤을 위하여 그 많은 사람의 희생과 돈이 들었으니…
농담으로 아내에게
“여보 당신이 먼저 죽으면 타지마할은 못 짖더라도, 원두막이라도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하나 지어 줄까?” 했더니 아내 왈
“딴소리 말고 살아 있을 때나 내게 더 잘해요” 했다.
사실 샤자한은 왕이었지만 아들 아우랑제부에게 유배되어 쓸쓸히 아그라포트 성에서 아내의 무덤인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생을 마감했다고 하니 그리 행복한 삶은 아닌 것 같다.
오늘은 잔시로 이동하는 날이다. 한 밤중 01:45부터 04:55까지 3시간의 열차를 타는 날이다. 아주 힘든 날이다. 한밤 중 까지 기다렸다가 3시간 동안만 기차를 타니 잠을 자기도 그렇고 안 자기도 그렇고, 그나마 열차는 또 연착이다. 1시간이 지나도 오지를 않더니 늦게 왔다. 기차를 타자 잠이 들었다. 갑자기 깨운다. 다른 때 같으면 1시간 전에 미리 깨워 준비를 했고, 당연히 도착시간보다 1-2시간씩 지연이 되어 문제가 없었는데 한 시간 늦게 출발한 것이 제시간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혼비백산 침낭을 개고 짐을 꾸려 내렸더니 배낭지퍼가 고장 나는 등 한바탕 난리를 치렀다. 그래서 잔시 야간 전투가 치열했다고 들 한다.
▪ 항상 내국인과 외국인의 입장료는 10이상 차이가 난다.
▪ 이스라엘 식당이 한국식당으로 바뀌고 있다고 하니 한국인 관광객의 수를 알만하다.
▪ 화장실 ‘큰 것’ ‘작은 것’ 달리 받는다.
▪ 김내곤 선생님의 2000봉이 넘는 백두대간 산행기는 완전 무용담이었다.(홈페이지에 가보시면 대단하다. http://www.nk1606.com/
여행 중 사귄 이교수님 부부(사이클 릭샤를 타고 어디론가...)
잔시에서 오르차까지 전용차량으로 갔다. 오르차의 호텔을 궁전 같다.
오르차의 궁전의 입장료는 250루피이다. 입장료는 인도 물가에 비해 후진국이 그렇듯이 엄청 비싸며 항상 내국인과 외국인의 입장료는 수십 배 차이가 난다.
그래서 정문을 돌아서 뒷문으로 가서 공짜로 구경할 수 있었다. 인도에서 여행을 하다보면 입장료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수준의 돈으로 생각해도 결코 싼 돈이 아니다.
오르차는 아주 작은 시골마을이지만 많은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카주라호를 가기위한 거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식당들이 여러 개가 있었다. 원빈식당이라는 곳을 들려 점심을 먹었는데 현지인들이 하는 것이라서 흉내만 내고 있었다. 김치라고 내놓는 데 열무로 만들었는데 그래도 비슷하기는 하다.
얼마전만해도 이곳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많이 왔기 때문에 이스라엘 식당이 많았었는데 이제 한국식당으로 바뀌고 있다니 한국관광객의 수를 짐작 할 수 있다. 때 호기심에 이강현교수가 여러 가지를 물어 보았다. 주인은 한국라면이 있느냐고 한다. 있으면 파격적인 비싼 값에 산다고 한다. 다 먹어 없으며, 있으면 우리가 먹을 것이라고 했다.
가게에서 한국라면과 인도라면 메뉴가 있어 진짜한국라면이냐고 물었더니 한국라면은 인도면에 한국스프를 넣은 것이라고 솔직히 대답한다.
나도 한국에서 라면스프를 모인다고 모여 몇 개 여분으로 가져갔었는데 인도 라면을 사서 한국의 신라면 스프를 넣어 끓였더니 정말 한국라면과 크게 다를 바 가없었다.
또 인도라면에는 고추장을 많이 풀어서 먹으면 좋았다. 배낭여행자들이 알아야 할 지혜인 것 같다. 한국라면 스프를 많이 가져가자.
식당에서 배가 살살 아파 화장실을 물어보니 무슨 complex에 가라고 한다. 급하게 뛰어 가서 화장실을 보고 나왔는데 웃통을 훌떡 벗은 청년이 돈을 내란다. 그래서 5루피를 주었더니 더 내란다. 이런 세상에 보통 1-3루피인데 5루피로도 모자라다니 항의를 했더니,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여기(소변기)는 5루피인데 당신은 저기(대변)에서 나왔으니 10루피를 내란다. 시간도 없고 하는 수없이 10루피를 내로 왔다.
저녁때는 술을 한잔하고 서로의 여행담을 이야기했는데 하이라이트는 김내곤 선생님의 2000봉이 넘는 백두대간 산행기는 완전 무용담이었다. 혼자 밤중에 가다가 짐승을 만난 얘기며 목매단 시체를 본 얘기 실감나게 하신다. 또 입담 좋으신 이교수님의 여러 가지 관점에서 본 인도를 얘기하신다. 그렇게 또 하루가 갔다.
▪ 악랄하기 순서는 택시왈라 > 오토릭샤 왈라 > 사이클릭샤 왈라, 그것도 아그라가 최고
▪ 인도에서 고추장 무역을 하다.
오늘은 카주라호 에로틱의 상징인 인도의 카주라호 사원군을 둘러본다. 카주라호 사원군은 성행위를 하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묘사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원 자체가 섬세하게 만들어졌음에 또 한번 놀랐다. 스스로 인디안 헬리콥터라고 하는 폐달을 밟아서 가는 싸이클 릭샤 왈라는 열심히 페달을 밟는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싸이클 릭샤를 탔다. 참 사이클 릭샤꾼들을 보면 안타깝다. 다리는 꼬챙이처럼 가늘고 몸은 비쩍 말랐는데 자기보다 두 배는 무거운 나와 또 아내를 싣고 달리는 모습이 너무 안쓰럽다. 마음 같아선 내가 자전거를 운전하고 릭샤왈라를 태워 역할을 바꾸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안쓰럽다고 사이클 릭샤를 타지 않으면 않을수록 그 사람들은 더 가난해 지는 것이니 열심히 타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다. 그리고 사이클 릭샤 왈라가 오토릭샤완라나 택시 왈라 보다 착하다. 내릴 때 가져간 목장갑을 한 켤레 주니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악랄하기 순서는 택시왈라 > 오토릭샤 왈라 > 사이클릭샤 왈라 순인 것 같다. 좀더 좋은 교통수단 운전사일수록 더욱 영악하다는 생각이 든다.
김선생님은 같은 릭샤를 두 번을 이용해 주었더니 한번은 그냥 태워준다고 해서 감탄을 하셔서 돈을 더 주었다고 한다. 이런 걸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하는데 나는 ‘그놈이 일부러 동정심을 유발시켜 더 많은 돈을 받아 내려는 쇼가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하게 하는 내가 나쁘다.
카주라호에는 한국식당 전라도 식당이 유명하다. 스스로 박상민이라는 콧수염을 기르고 모자를 쓰고 가수 박상민을 흉내 낸 식당주인이 만드는 닭죽과 김치는 값도 그렇고 일품이다. 식사를 하고 같이 사진도 찍었다.
식사 중 일행인 김사장님은 우리들 일정에 비해 고추장이 많이 남았다고 가게주인 박상민과 흥정을 한다. 한국에서 고추장 한 봉지에 1100원에 사왔으니 얼마에 사겠는냐고 한다. 100루피 씩 쳐 준다고 한다. 짐 도 무거운데 그정도면 2배가 넘으니 팔고 가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사장님은 인도에서 고추장 무역을 한 최초의 거상이라고 농담을 건넸다.
▪ 1940년도 이전에 영국 놈들이 쓰던 헌 기차에 헌 철길이니 문짝하나 제대로 맞는 것이 없다.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노상강도 프로크루스테스가 생각난다. 지금부터 모든 기준을 인도에 맞추는 거다.
▪ 역 철길엔 시바신이 타고 다니는 신성한 '소' 가다니고 천정에는 하누만신 '원숭이' 판이고 플랫폼은 개판이고 철길 구멍마다 코끼리 신 가네샤가 타고다니는 '쥐' 판이다.
카주라호 동부 사원군에 이어 오늘은 서부사원군은 사원의 모양은 비슷한 것 같은데 자이나교 사원군이라고 한다. 특이한 것은 교주의 상이 나체로 되어 있었는데, 나는 못 보았지만 교주가 발가벗고 있었다고 한다.
오늘밤은 힌두교 성지로 화장터로 유명한 바라나시를 가기위해 사트나 역으로 간다. 전용차량으로 사트나로 이동한다. 사트나 역은 바라나시를 가기위한 작은 역이다. 인도의 역들은 완전히 피난민 수용소를 방불케 한다. 모두가 승객 모두가 노숙자다. 우리도 노숙자들 틈에 끼어 기약도 없는 열차를 기다려야한다. 시간표는 있지만 시간은 지키지 않는 기차를 기다려야한다. 또한 갑자기 플랫폼이 바뀌면 정신없이 바뀐 플랫폼으로 달려가야 한다. 기차는 한역에 어떤 때는 몇 십 분이건 머무르면서 출발하지 않고 심지어는 역도 아닌 곳에서도 다른 열차를 피해 주기위해 서서 한없이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1940년도 이전에 영국 사람들이 쓰던 헌 기차에 헌 철길이니 그도 그럴 것이다. 문짝하나 제대로 맞는 것이 없고 오죽하겠는가? 내가 대학 때(30여 년 전) 조치원서 여수행 완행열차를 탔던 생각이 난다. 아마 그보다도 못하면 못했지 낫지는 안다.
사트나에서 바라나시를 가는 열차도 여지없이 늦게 도착했다. 역 철길엔 시바신이 타고 다니는 신성한 '소' 가다니고 천정에는 하누만신 '원숭이' 판이고 플랫폼은 개판이고 철길 구멍마다 코끼리 산 가네샤가 타고다니는 '쥐' 판이다. 그리고 개 팔자, 소 팔자, 원숭이 팔자, 쥐 팔자가 가장 좋은 나라는 인도라고 소리 높여 강조하고 싶다. 하지만 방역이 되지 않아 피부병 일색이니 조심해야한다.
열차에서 이번에는 내 침대 번호가 창가 쪽 서로로 된 것이 배정되었다. 드러누우면 정확히 내 키 176cm 이다. 1mm의 오차도 없다. 간신히 누워서 잘 수가 있다. 그리고 나보다 작으신 김사장님은 괜찮았겠지만, 나보다 10cm도 더 키가 큰 이교수님은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을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노상강도 ‘프로크루스테스’가 생각난다.
길 가던 나그네를 집으로 초대한 다음 쇠 침대에 눕히고 침대 길이보다 짧으면 다리를 늘이고, 침대보다 길면 다리를 잘라버렸다는 신화가 생각이 난다. 오직 자기기준에만 맞추려고 하는 것에 비유된다.
지금부터 모든 기준을 인도에 맞추는 거다. 결심을 했다. 점잖게 행동할 것도 없고 체면을 차릴 것도 없고 인도 놈들과 한번 붙어보는 거다.
1월 21일(16일차) 바라나시-화장터, 강가, 바자르
▪ 내가 왜 남의 나라에 와서 화장터 장작 값을 대냐? 이 놈들아.
▪ 저렇게 더러운 물이 성수라고, 오염은 계속되고 '오염''거지' 저 모든 것이 관광 자원이니??
드디어 그 유명한 인도의 힌두교의 성지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바라나시를 보면 인도를 다본 것이라고 한다. 여장을 풀고 바라나시 갠지스강(Ganga)으로 갔다. 정말 인산인해다. 차, 마차, 오토바이, 릭샤, 사람들이 뒤엉켜 밀려간다. 그렇게 복잡한 거리는 처음인 것 같다. 강가 강물에 업보를 씻는다고 목욕하는 사람들이 물은 더럽고 추운날씨인데도 한창이다. 가이드 은정씨가 바라나시에서 유학을 할 때 사귀었다는 소녀도 만났다. 한때 괜찮은 집안(브라만)이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강가에서 꽃을 팔고 있는 12살 먹은 소녀였다. 밝아보였다. 꽃을 몇 송이 사주었더니 고맙다고 짜이 장수를 시켜 짜이를 먹으라고 한다. 짜이 값을 내려니 막 무가네로 못 내게 하고 자기가 낸다. 의심을 많이 했지만 이번만은 진심이었다. 다음날도 만났는데 안다고 매우 반가와 한다. 꽃을 또 준다. 절대 돈을 안 받을 눈치다. 꽃송이를 내 업보와 함께 강가에 띄워 보냈다.
이제 화장터로 옮겨 화장터로 갔다. 화장터에선 훨훨 타는 장작더미와 막 점화 하는 곳등 7군데 정도가 있었다. 시체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었다. 얼굴과 발은 볼 수 있게 되어있다. 시체의 얼굴은 노란색으로 화장을 한 것 같고 몸은 붉은 천으로 덥여 대나무로 만든 들것(상여)에 실려 가고 있었으며, 화장전에 신성한 물인 갠지스강물에 적신다음 화장이 시작된다. 상주인 듯한 사람이 지켜보고 있으며 점화를 하는 것 같다. 타고 있는 장작더미를 더 잘 타라고 시체가 타고 있는 장작더미를 두들겨 팬다. 하루에 400-500구의 시신이 이 화장터에서 화장된다고 한다.
인도 힌두들의 소원이 죽어서 갠지스강가에서 화장되어 강가에 뿌려지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다. 때문에 죽을 때가 되면 손녀딸과 함께 갠지스강가의 여인숙에 묵으면서 죽음을 기다린다고 한다. 손녀딸은 임종을 기다리는 할아버지를 보살피다가 할아버지가 죽으면 집안에 알려 장례를 치른다고 한다.
우리가 몇이 구경을 하니까 한사람의 안내자가 달라붙어 설명을 한다. 시체 한 구를 화장하는데 장작 400kg이 필요하며 100kg의 장작 값이 1000루피이 총드는 돈이 4000루피, 한 구를 화장하는데 3시간 정도가 소요되며 가난한 사람은 돈이 업서 화장하기가 힘들어 가난한 사람을 위해 장작을 한사람이 10kg씩, 100루피씩을 사 달라고 한다. 참 별 사기꾼 다 본다. 참 인도인다운 사기다. 내가 왜 남의 나라에 와서 화장터 장작 값을 대냐? 물은 오염 시킬대로 오염시키는 화장터에서 말이다.
저렇게 더러운 물이 성수라고 몸을 씻고 , 오염은 계속되고 '오염''거지' 저 모든 것이 관광 자원이니??
▪ 일몰 때 힌두의식은 볼만했다.
▪ 찬두리 치킨이 유명하다고 해서 먹었는데 결론은 모두 닭이 아니라는 거다.
새벽에 갠지스강가에서 일출을 보고, 일출 때 한사람이 하는 의식을 감상한 다음 저녁의 의식은 꾀 유명하다고 하여 저녁때까지 기다릴 순 없어 주로 쇼핑을 해보기로 했다. 모나리자라는 한국 음식점에서 닭 죽을 시켜 먹었다. 그런대로 맛이 있었다. 인도에서는 모든 게 채식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맛이 있게 느껴질 수밖엔 없다. 정말 닭인가가 문제다. 여기선 정말 닭이었다. 하지만 어디에선가 찬두리 치킨이 유명하다고 해서 먹었는데 결론은 모두 닭이 아니라는 거다. 아마 비둘기 일 것이라는 거다. 작고 붉었다. 지금도 의심이 가는데 모나리자 음식점 옥상에서 보니 비둘기를 새장에서 기르는 사람들이 비둘기를 잡고 있어 의심을 더하게 했다.
가게마다 또는 끌고 다니는 인력거에 주렁주렁 매단 라면수프 같은 길게 매달린 것이 무엇인가 의심스러웠는데 그것이 인도인의 씹는담배다. 마약성분까지 있어 값도 천차만별이란다. 손으로 비벼 입으로 씹어 한참 물고 있다가 길가 아무데나 벌겋게 뱉어 놓는다. 길가다 보면 자주 볼 수 있는데 역겹다.
식사와 쇼핑을 위하여 바라나시 골목을 들어섰는데 정말 미로와 같았다. 길은 사람 둘이 간신히 다닐 만큼 좁은데 소, 개, 오토바이, 사람들이 마구 지나다닌다. 소똥이 참 많다. 소똥 안 밟고 지나다녔다면 참 다행이다. 이곳엔 한국식당 ‘모나리자’와 일식집 산티레스토랑’이 괜찮았다. 내 생각은 산티레스토랑이 훨씬 나은 것 같다.
인도에는 경찰도 많으며 경찰 유니폼 수준의 인도에 알맞게 거의 거지 수준이다.
오늘 밤은 마지막 열차를 타고 고락프르로 간다.
1월 23일(18일차) 고락프루,소나울리, 룸비니(네팔)
▪ 채식만 하던 인도보다는 네팔에서는 돼지고기 닭고기가 메뉴에 있어 실컷 먹었다.
고락푸르에 내리자 마자 전용버스를 타고 소나울리 인도와 네팔의 국경도시를 통과해서 출입국 수속과 비자를 받고 부처님의 탄생지 룸비니로 이동했다. 소나울리 국경도시에서 비자를 받는 동안 네팔 여행사 에이전트라는 사람과 이야기를 했다. 자기는 우리와 똑같은 몽골리안이라고 하면서 자기 형이 한국에서 회사에서 8년째 일을 하고 있으면 자기는 일본어와 영어를 할 수 있어 일본 관관객의 가이드도 했다고 한다. 나이는 24세인데 자기는 돈을 많이 벌어 30이 될 때쯤 결혼을 할 거라고 한다. 네팔에는 인디언이 70%인데 이들은 힌두교를 믿지만 30%정도 되는 몽골리안들은 불교를 믿는다고 한다. 책에 나온 통계와는 좀 차이가 있었다. 특히 포카라에 몽골리안이 많다고 했다.
지나는 길에 부처님의 탄생지를 잠깐 둘러보고 호텔 체크인하고 호텔에서 저녁을 사먹었는데 대단히 비싸다. 호텔 뷔페식이 인도 네팔 기준에서 엄청 비싸지만 우리나라 갈비탕 값이다. 하지만 채식만 하던 인도보다는 돼지고기 닭고기가 메뉴에 있어 실컷 먹었다.
▪ 네팔 이제 인도의 때를 벚는다.
▪ ‘노스페이스’가 네팔 국민복이아닐까 하는 정도로 노스페이스 천국이다.
▪ 네팔의 한국식당은 인도와는 달리 한국 음식 맛을 제대로 낸다.
전용차량으로 안타 푸르나가 보이는 호수의 도시 포카라 이동 한다.
지저분하던 인도의 때를 씻어버리는 것 같아 속까지 시원한 느낌이 든다. 계곡물이 맑게 흐르고 폭포와 산과 계곡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치 계단식 논이 그림처럼 나타난다. 정말 네팔의 농촌은 아름답다. 산허리를 돌고 돌아 수백구비를 돈다. 빨간색 유니폼을 입은 초등학교 학생쯤 되는 애들의 등교하는 모습이 귀엽다. 중간에 전망이 좋은 곳에서 경치를 구경하라고 해서 내렸다. 한국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있었다. 모든 포장이 한글로 쓰여 있었다. ‘맛김’‘초코파이’등 우리 모두는 부끄럽다고 말했다.
베이스캠프 리조트에 짐을 풀고 쉬었다가 포카라 여행자 거리로 나갔다. 여행자 거리에는 대개의 짝퉁 등산복들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특히 노스페이스(north face)가 대부분이다. 카투만두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네팔의 국민들은 노스페이스 상표를 가장 많이 입었으며 시장에서도 파는 짝퉁이 거의 노스페이스 상표이다. 노스페이스사에서는 왜 단속을 안할까? 아마 노스페이스가 네팔 국민복이 아닐까 하는 정도로 노스페이스 천국이다.
하지만 어떤 상품들은 값에 비해 아주 입을 만하다. 폴라텍 등산내피를 우리나라 돈으로 4500원 정도의 내피는 부드럽고 따뜻해서 몇 명이 사서 입었는데 정말 괜찮다. 보통 오리털 파카도 3만원 안팎으로 살 수 있을 것 같다. 품질은 당연히 떨어지지만 가격대비 괜찮다.
모르로 포카라만 그런제품들이 있는줄 알았는데 실은 카투만두 시장이 훨씬 크고 제품도 다양하다. 부디 포카라에서 많은 것을 구입하지 말고 카투만두 더르바르 광장 옆 빅 바자르 여행자거리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 더 나은 것 같다. 물건들이 훨씬 다양하다. 나도 짝퉁 오리털 스톰파카를 하나 구입했다. 짝퉁치곤 꽤 비싸게 70$(6만8천원)이나 주고 샀다. 우리나라에서 정품으로 구입하면 아무래도 질은 좋겠지만 30-40만원을 하는 것 같아, 일년에 한두 번 산에 갈 때 입을 건데 따뜻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샀다.
저녁 무렵 호수에 나가 배를 타고 호수 가운데 사원을 구경하고 저녁에 한국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포카라에는 한국식당이 ‘서울 뚝배기’가 유명하다. 좀 고급식당인데 삼겹살과 소주를 판다. 삼겹살은 한국에서 먹는 가격이라고 생각하고 먹으면 된다. 1인분에 5-6천원 정도다. 좀 더 내려가 옆 골목으로 포카라짱으로 가는 골목에 한국인이 하는 식당은 아니지만 한국식 닭죽(200루피), 김치찌개 등을 제법 맛있게 하고 값이 비교적 싼 식당이 있어 먹을 만 하다. 또한 네팔막걸리 ‘창’을 함께 먹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창’은 우리 막걸리만은 못하지만 막걸리 맛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네팔의 한국식당은 인도와는 달리 한국 음식 맛을 제대로 낸다. 인도의 한국식당은 흉내만 냈지 영 아닌 곳이 많았는데 네팔은 거의 한국 맛을 따라오고 있다.
▪ 원래는 푼힐 전망대에서 안나푸르나 제1봉을 보는 것이 내 소원이었는데
▪ 한국말을 배우고 있다면서 한국말을 가르쳐 달란다. 언어는 돈이다.
아침 일찍 사랑곳 전망대에 택시로 가서 일출을 볼까하다가 날씨가 흐리다. 일출을 보러가게 되면 호텔에서 아침을 먹을 수 없다. 아침을 먹는 것은 중요하다. 호텔식만큼 먹을 만 한 식사는 없기 때문이다. 아침을 굶느냐 일출을 보느냐가 중요한데 날씨가 흐린 날은 잘못가면 아침도 굶고 일출도 못 보게 된다. 일찍 일출을 보러 출발한사람들 아침도 굶도 일출도 못 보았다고 한다. 우리의 판단이 옳았다. 우리는 아침을 먹고, 데이빗이 빠져 죽었다는 폭포, 티벳난민촌, 등을 먼저 구경한 다음 9시쯤 사랑곳으로 향했다. 그냥 멀리서 안나푸르나 설산을 감상하려고 한다. 설산이 보이는 시간은 10시에서 12시경이라고 들었다. 안개 때문에 오후는 보기 힘들다고 한다. 600루피에 3시간 웨이팅으로 택시로 갔다. 택시에 내려 20분쯤 올라가다가 오른쪽을 바라보니 안나푸르나 등 수 많은 눈 덮인 명산들이 구름 속에 펼쳐진다. 감사합니다. 내 평생에 저렇게 아름다운 안나푸르나를 멀리서나마 볼 수 있다니… 원래는 베이스캠프는 못가더라도 푼힐전망대에서 안나푸르나 제1봉을 보는 것이 내 소원이었는데 사랑곳에서라도 보니 그래도 위안이 된다.
오후 3시쯤 숙소에 들어오니 내가 좋아하는 호주오픈테니스 준결승이 페너러와 이번우승자 조코비치와 벌어지고 있었다.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정전이 되었다. 인도와 네팔을 정전은 보통이고 음식점 식당에 밤에는 촛불을 밝히고 밥을 먹는 곳은 보통이다. 관리실에 가서 tv가 안나온다고 했더니 관리인이 ‘정전’이라고 한국말로 한다. 한국말을 하는 것이 재미있어 ‘정전?’ 했더니 웃으면서 한국말을 배우고 있다면서 한국말을 가르쳐 달란다. 한국말을 꾀 열심히 배우고 있었다. 한국인이 얼마나 많이 찾는가를 알 수 있다. 언어는 돈과 연결된다. 그래서 30분은 붙들려 한국말 가르쳐 주느라 애먹었다.
저녁을 서울 뚝배기에서 삼겹살과 남은 소주(20일을 애지중지 안 먹고 아낀 소주)로 이교수님의 재미있는 중세 동북아 조공과 무역에 대한 강의 까지 곁들여 즐겁게 먹었다.
▪ 카투만두에서 만두를 맛있게 먹다.‘모모(momo)’와 ‘딤솜(dimsom)'
아침 일찍 국제산악박물관으로 향했다. 아내와 사모님은 택시로 가고 나와 이교수님은 자전거로 10여 분 갔다. 요금은 300루피로 꽤 비싼 편이다. 네팔인의 생활상과 다양한 설산 사진들, 산행의 역사들이 사진으로 전시되어있다. 대개는 일본 산악인들이 찍은 사진이 많았으며 우리나라 산악인들은 소개되지 않아 섭섭했다.
오후에는 카투만두로 이동한다. 굽이굽이 수백 아니 수천굽이를 도는 것 같다. 차가 계속 회전을 하니 불안정하고 또 차가 오래된 차이다보니 굴곡이 있을 때마다 머리는 천정에 닿을 듯 뛴다. 포카라에서 카투만두까지 190km라고 한다. 고속도로면 2시간이면 충분하지만 산길에다 길은 좁고 해서 12시에 출발한 것이 7시가 넘어서 카투만두에 도착했다.
오는길에 차마고도에서 볼 수 있는 출렁다리를 경험했다. 쇠받줄로 만들었는데 정말 아슬아슬하다. 허름하고 낡은 것 같아 겁이 난다. 커다란 짐을 지고 다리를 건너며 중간에서 피해가는 모습이 위태롭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나오니 마침 다양한 음식을 파는 푸드센터가 있어 맥주와 볶음밥 등을 먹을 수 있었으며 카투만두에서 만두를 먹게 되었다. 카투만두에는 우리나라 만두와 꼭 같은 맛과 모양을 가진 만두가 있다. 우리는 간장을 찍어 먹지만 카투만두에선 소스를 찍어먹는데 소스 맛도 간장 못지않게 입맛에 맞았다. 만두에는 ‘모모(momo)’와 ‘딤솜(dimsom)'이 있는데 똑같은데 만두 속을 모두 봉해서 속이 안보이면 모모, 만두 속을 네 군데를 눌러 완전 봉하지 않으면 딤솜이다. 맛에는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1월 27일(22일차) 카투만두(더르바르, 파르파티나트 등)
▪ 살아있는 여신 꾸마리- 신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 수많은 인파가 지나다니는 거리에서 외국인을 잘도 가려내어 입장료를 받는다.
▪ 택시 운전사들은 외국인은 봉으로 보는 것이다.
아침 일찍 템포(여럿이 탈수 있는 작은 트럭)를 타고 티벳 불교의 총본산이라는 큰 규모의 불탑 보다나트로 갔다. 템포를 타려고 하는데 택시 운전사들이 방해를 택시를 300루피에 가잔다. 12루피면 가는 것을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니까 템포를 물어보면 템포운전사에게 무어라고 지껄여댄다. 템포운전사가 우리 6명 150루피라고 한다. 원래는 72루피인데 택시운전사의 농간으로 150루피가 되었다. 그럼 우리가 전세 냈다고 하고 일단 탔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태운다. 다른 사람이 12루피를 들고 있기에 내가 조수에게 건네주면서 12루피 인데 우리도 12루피씩만 낼 거라고 했더니 웃는다. 72루피만 받는다고 한다. 그래도 착해서 150루피를 주었다. 보다나트를 들려 파수파타나 사원군은 네팔 힌두교의 본산으로 인도의 화장터와 비슷했으며 바크마티 강은 너무 불결했다.
올 때도 템포(마이크로버스)로 왔는데 8루피씩에 왔다.
오후에는 고대 왕궁이 있는 구 왕궁이 모여 있는 더르바르 광장에서 대부분 목조 건물과 살아있는 여신의 집 꾸마리사원 등을 둘러보았다. 4-5세 여아에서 여러 가지 조건으로 선발되어 초경을 치르면 신성을 읽게 된다고 한다. 오후 4시가 되면 꾸마리가 창틈으로 3초정도 얼굴을 보여 준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하러 모여든다. 우리도 4시까지 기다려 얼굴을 한번 보았다. 꾸마리도 은퇴하고 나면 대개 비참한 삶을 산다고 하니 기가 차고 슬프다. 신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더르바르 광장 입장료는 내국인과 이웃(파키스탄, 인도, 부탄)은 무료인데 그 밖의 외국인(other) 200루피이다. 수많은 인파가 지나다니는 거리에서 외국인을 잘도 가려내어 입장료를 받는다. 유효기간이 며칠씩 되기 때문에 두 팀이라면 서로 다른 곳을 교대로 보면 입장료를 반으로 절약할 수도 있다.
저녁때 고별 파티를 하기 위하여 타멜거리에 있는 네팔 짱에서 만나 저녁을 먹고 맥주 파티를 했는데 우리 실버들은 일찍 자리를 떴다. 네팔 짱은 게스트하우스겸 식당인데 한국인 여자가 운영한다. 한국인이 운영하느니 만큼 한국인의 식성을 얼마나 잘 알아서 음식을 만들겠는가. 제육복음 돌솥비빔밥 모두 한국의 맛 그대로며 친절하고 값도 비싸지 않고 가장 먹을 만한 식당이라고 추천한다.
호텔로 돌아올 때 택시를 탔는데 문제가 생겼다. 택시를 잡아 가격흥정을 하려니 미터기대로 내면 된다고 한다. 우리 생각에 정직한 운전수라고 생각하고 택시를 두 대에 나누어 탔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택시를 타니 미터기를 꺾었는데 12루피가 나타났다. 그래서 12루피가 기본요금이구나. 그러면 1-1.5km 정도 되는 거리 제아무리 많이 나와야 50루피 안 밖으로 요금이 나오겠지 했다. 그런데 기본거리도 없이 출발하자마자 마다 10루피씩 막 올라간다. 호텔에 도착하니 300루피(4500원)이다. 뒤 따라온 이교수님이 탄 택시는 얼마 나왔느냐고 물었더니, 미터를 꺾으라고 몇 번을 했는데도 앞의 택시에 나온 것만큼만 내라면서 구지 미터를 안 꺾더라고 한다. 옆의 택시는 미터기가 조작되어 있지 않거나 조작할 줄을 모르는 택시운전사 인 것이다. 이건 우리나라 요금보다도 훨씬 더 비싼 요금이다. 이교수님이 강하게 항의를 했다. 무슨 요금이 이렇게 비싸냐고 했더니 야간 할증이라 더불 요금이란다. 지금이 7시 40분인데 무슨 할증이냐고 했다. 말도 안 된다. 호텔손님인지 하는 네팔인에게 물으니 한참 따지더니 택시 운전사에 동조를 한다. 그놈이 그놈이다. 하는 수 없이 호텔 안 지배인에게 데리고 갔다. 야간 할증이 몇 시부터냐고 했더니 9시부터라고 하면서 우리 편을 든다. 그리고 시계를 보면서 택시 운전사에게 무슨 소리냐고 하는 것 같다. 그랬더니 150루피만 내란다. 그래서 내가 거짓말로 무슨 소리냐 갈 때 100루피에 갔다고 했더니 그럼 100루피만 내라고 해서 100루피씩 주어 보냈더니 얼른 도망치듯 가버린다. 이튿날 실제로 똑같은 장소에서 저녁을 먹고 100루피에 호텔로 가자고 했더니 두말없이 타고 왔다. 실은 100루피도 많은 요금인 것이다. 택시 운전사들은 외국인은 봉으로 보는 것이다.
파탄을 다녀와서 주로 더르바르 광장 옆 바자르에서 쇼핑을 했다. 물건의 종류와 양이 대단하다.특히 여성분들은 쇼핑에 더 열을 올린다. 인도 네팔여행에서 쇼핑의 90%는 네팔 더르바르 옆 빅 바자르에서 한 것 같다.
호텔 조식후 공항으로 이동 여행의 일정을 마무리한다.
저녁때 먹은 럼주가 취한다. 비행기 내내 잠을 잦다.
집에와서 삼겹살에 소주 먹고 배탈 설사가 나서 사흘을 앓았다.여행 중 읽은 류시화가 쓴 책속에 이런 글들이 재미있어 메모를 해본다.
1. 원숭이와 골프공
인도에는 소와 개뿐만 아니라 원숭이의 천국이다. 특히 원숭이신(하누만)을 숭배하기 때문에 원숭이들이 더 판을 친다. 기차역 천정이건 담벼락이건 공원이건 원숭이들이 떼를 지어 다닌다.
인도에서 골프를 치면 자주 원숭이가 공을 물고 간다고 한다. 하지만 골프 규칙은 원숭이가 물어다 놓은 자리가 공의 낙하지점이 되기 때문에 재수가 좋아 원숭이가 물어다 홀에 집어넣으면 홀인원이 되기도 하고 물고 도망가면 낭패가 되기도 한다니 재미있는 일이다.
2. 행복과 불만은 본인이 선택한다.
쇠로 만든 수도꼭지에 불만족하는 자는 황금으로 된 수도 꼭지라도 불만족 한다.
3. 간디의 명언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고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라.
4. 사랑에는 과거형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고 해도 ‘사랑했었다.’라는 과거형을 쓰는 것은 아니다. 현재도 사랑하고 있다.
5. 소금 속에 음식을 넣지 말라
소금 속에 음식을 넣지 말고 음식 속에 소금을 넣어야지 소금 속에 음식을 넣으면 너무 짜서 먹을 수 없는 것처럼 욕망 속에 삶을 넣지 말고 삶속에 욕망을 넣으며 살아라.
6. 잠든 사람은 깨울 수 있지만 잠든 체 하는 사람을 깨울 수 없다.
병든 사람은 고칠 수 있지만 꾀병을 앓는 사람은 고칠 수 없다와 맥이 같다.
‘내가 인도가 좋아서 온다.’가 아니라 ‘인도가 당신을 부르는 것이다.’ 두말이 무엇이 다를까만, 위와 같은 말들은 어떻게 보면 궤변 같으면서 어떤 철학이 담긴 듯도 한 것이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고 유시화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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