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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문화재·희규자료

[스크랩] 조선.. 과거에 급제한 가문의 순위와 왕비를 배출 한 가문의 순위..

by 동아스포츠 / 相 和 2018. 6. 30.

우리나라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을 검색해 보면, 조선시대 25대 왕에 걸쳐 양반(兩班: 문과ㆍ무과 시험에 합격한 가문)은 각각 총 804회에 걸쳐 실시됐는데, 급제자 수는 문과 1만5151명, 무과 2만8246명이었다. 그중 과거에 급제를 하여 이름을 올린 자들의 가문을 순위로 매겨 보았다. 그리고 왕비 배출 가문도 같이 말이다.


한반도에서 성씨를 처음으로 널리 퍼지게 만든이는 고려의 건국주 왕건이었다. 한반도에 마지막 전국시대(戰國時代)였든 후삼국을 통일하는 가운데 왕건은 지방 곳곳에 호족세력들과 혼인 정책으로 많은 아내와 자식을 생산하였다. 나라에 공을 세운자들과 자신의 군대에 호응이 있는자들에게 중국의 문물이었든 성씨(姓氏)를 하사(下賜)하는 정책을 편 것이다. 


그리고 이게 국민 호구 조사에도 사용되고 세금을 발부하는데에 없어서 안될 정책 중 하나가 되었다. 삼국시대에도 성씨(姓氏)는 별의미가 없었다. 그냥 이름만 있었을 뿐이다. 왕건에게 성을 하사 받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일반 평민들과 달리 차별화(지배층과 피지배층) 하였고.. 이는 조선시대까지 이 문물은 계속 이어져 갔다.


과연!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두에게 묻고 싶다. 자신의 성씨(姓氏)에 대하여 의심을 해 본적이 없는가? 


조선은 인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쳐 조선의 문화와 사상은 많이 변하시 시작했다. 유교사상으로 군자의 나라를 만들겠다는 꿈이 상상조각이 나버렸고, 지배층(양반)들이 천대 시 하였든 돈(자본주의)의 경제학이란 뿌리 가 서서히 사회 전반에 내리기 시작하였다.


즉, 돈이면 뭐든 다 할 수 있는 시대로 조금씩 변해 갔다. 17C~18C에 들어 조선의 사회는 막강한 자본을 가진 자들이 돈이 없는 몰락한 양반들을 매수 하여 성씨(姓氏)를 사고 파는 행위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즉, 명문가에 가문에 입적을 하게 된다. 그게 바로 족보가 널리 퍼지게 된 원인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어느 집안에 가든지 가문의 족보가 한 권씩을 다 있다. 이때 이후부터 '평민(平民)'이라 불렀든 일반적 국민(國民)의 개념이 이젠 모두가 성씨(姓氏)를 가지게 되는 백성(百姓: 일백개의 성씨 즉, 많은 성씨 = 일반국민)이라 불러지게 되었다. 사회가 또 한 번에 변혁을 한 것이다.


1909년에 들어서 한반도에는 어느 누구나 다 성씨(姓氏)를 가지게 되는 사회가 된다.. 고려가 건국한 지 약 1,000년만에 일이다..


한반도에 세운 나라는 몇 나라 되지 않는다. 그러니 왕족의 성씨도 얼마되지 않는다.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 조선초에서 중기까지도 조선의 총 인구 수에 약 3% 정도가 양반층인데 그 중에 과거이래 왕족의 자손들이 3% 내에서 70% 이상 차지하였다.  각 가정에 족보를 보면 지금 대한민국의 사회에서는 다 양반의 가문들이다..그리고 대부분이 왕족이다. 웃끼지 않는가?


그래서 대한민국은 왕족들의 나라인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가문에 족보.. 다는 믿지 말자..^^.. 

 

왕족인 전주이씨, 경주 김씨, 밀양박씨, 개성 왕씨, 김해 김씨, 미스테리한 백제 왕가들의 성씨(부여씨라고도 함), 고구려 왕가의 공식적 성씨인 고씨(?), 발해의 대씨도 정확한 기록을 찾을 수가 없다.... 그중 개성 왕씨, 백제의 부여씨, 고구려의 고씨, 발해의 대씨를 제외 한 왕족의 성씨(姓氏)를 사용하는 우리나라 인구는 얼마나 될까? 아마도 엄청 날 것이다.. 조선의 기록이외는 우리의 역사 자료는 매우 부실하다. 그래서 조선사회에 대한 자료만 가지고 나열해 보겠다. 


아래는 조선시대 문,무 양과에 급제한 사대부들의 가문에 총합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왕비를 배출한 가문도 나열하였다. 참고 바란다. 조선시대에 최고의 가문은 어딘지를 알수 있지만, 여기에도 팔이 안으로 굽는 형태를 보인다. 혈족과 지연, 학연 등이 많이 작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순위

성씨

무과(명)

문과(명)

합계(명)

1

전주 이씨

1,427

870

2,294

2

김해 김씨

1,429

130

1,559

3

밀양 박씨

1,134

267

1,401

4

경주 김씨

679

213

892

5

청주 한씨

493

292

785

6

파평 윤씨

306

346

652

7

남양 홍씨

357

292

649

8

안동 권씨

259

368

627

9

진주 강씨

374

228

602

10

경주 김씨

380

180

560

11

안동 김씨

228

322

542

12

광산 김씨

270

262

532

조선시대 804회 실시한 과거(문과, 무과)에 급제한 가문의 순위



 

구 분

문 과

무 과

순 위

가 문

인원(명)

가 문

인원(명)

1

전주 이씨

870

김해 김씨

1,429

2

안동 권씨

368

전주 이씨

1,427

3

파평 윤씨

346

밀양 박씨

1,134

4

안동 김씨

321

견주 김씨

679

5

남양 홍씨

292

청주 한씨

493

6

청주 한씨

290

경주 이씨

380

7

밀양 박씨

267

진주 강씨

374

8

광산 김씨

262

남양 홍씨

357

9

연안 이씨

254

파평 윤씨

306

10

여흥 민씨

242

평산 신씨

300

과거별 급제한 가문의 순위


 

순위

가문

인원(명)

왕비 명

1

청주 한씨

5

덕종(세조의 아들 추존)의 소혜왕후

예종의 장순왕후, 안순왕후

성종의 공혜왕후

인조의 인열왕후

1

파평 윤씨

5

세조의 정희왕후

성종의 제헌왕후(폐비), 정현왕후.

중종의 장경왕후, 문정왕후

2

여흥 민씨

4

태종의 원경왕후

숙종의 인현왕후

고종의 명성황후

순종의 순명효왕후

3

경주 김씨

3

정종의 정안왕후

숙종의 인원왕후

영조의 정순왕후

3

청송 심씨

3

세종의 소헌왕후

명종의 인순왕후

경종의 단의왕후

3

안동 김씨

3

순조의 순원왕후

헌종의 효헌왕후

철종의 철인왕후

4

반남 박씨

2

인종의 인성왕후

선조의 의인왕후

4

청풍 김씨

2

현종의 명성왕후

정조의 효의왕후

4

거창 신씨

2

연산군의 부인 신씨

중종의 단경왕후

5

안변 한씨

1

태조의 신의왕후

5

곡산 강씨

1

태조의 신덕왕후

5

안동 권씨

1

문종의 현덕왕후

5

여산 송씨

1

단종의 정순왕후

5

연안 김씨

1

선조의 인목왕후

5

문화 류씨

1

광해군의 부인 류씨

5

양주 조씨

1

인조의 장열왕후

5

덕수 장씨

1

효종의 인선왕후

5

광산 김씨

1

숙종의 인경왕후

5

함종 어씨

1

경종의 선의왕후

5

달성 서씨

1

영조의 정성왕후

5

남양 홍씨

1

헌종의 효정왕후

5

해평 윤씨

1

순종의 순정효황후

조선에 왕비를 배출 가문의 인원과 왕후의 이름


출처 : "세미신선의 반도원(蟠桃園)의 꿈..
글쓴이 : 세미신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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