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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농사정보

[스크랩] 수원....화성행궁

by 동아스포츠 / 相 和 2018. 6. 30.




[수원] 화성행궁

< 2014. 11. 21 >






화성행궁은 1789년(정조 13년) 팔달산 동쪽 기슭에 건립되었다. 수원부 관아와 행궁으로 사용되다가 1794년부터 96년(정조 18년~20년)에 걸쳐 최종 완성되었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친 장헌세자(사도세자)의 원침인 현륭원(현재의 융릉)을 13차례나 찾았던 정조는 참배 기간 내 화성행궁에서 유숙하였다.











 


신풍루는 화성행궁의 정문으로 1790년(정조 14년)에 세우고 진남루(鎭南樓)라고 하였다. 1795년 정조는 신풍루로 고치라고 명하여 조윤형으로 하여금 다시 편액을 쓰게 하였다.










 


좌익문은 중양문 앞에 있는데, '좌익은 곧 곁에서 돕는다'는 뜻으로 내삼문을 바로 앞에서 도(道)와 행궁을 지키는 중삼문(中三門)이다.










 


중양문은 궁궐 건축의 삼문 설치 형식에 따라 행궁의 정전인 봉수당을 바로 앞에서 가로막아 굳게 지키는 역할을 하는 내삼문(內三門)이다.










 


봉수당은 화성 행궁의 정전(正殿)건물이자 화성 유수부의 동헌 건물로 장남헌(壯南軒)이라고도 한다. 1795년(정조 19년) 정조는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진찬례를 이 건물에서 거행하였다.










 













 













 


정조대왕










 


회갑연 진찬례상을 받은 혜경궁 홍씨










 


봉수당










 


경룡관은 장락당의 바깥문으로 사용한 부속 건물이다.










 


장락당은 1795년 을묘원행중 혜경궁 홍씨의 침전으로서 1794년(정조 18년) 화성 성역 중에 완성되었다.










 













 













 


복내당은 행궁의 내당(內堂)으로 정조가 행차시에 머물렀던 곳이다.










 













 













 













 


유여택은 평상시에 화성유수가 거처하다가 정조가 행차시에 잠시 머무르며 신하를 접견하는 건물이었다.










 













 













 


유여택










 













 


외정리위문










 


외정리소는 정조를 비롯한 역대 임금이 행차할 때 화성행궁에서의 행사 준비를 담당하는 관청이다.










 


비장청은 관찰사나 절도사등 지방관이 데리고 다니던 막료인 비장들이 사용하던 건물이다.










 


서리청은 문서의 기록 및 수령, 발급을 담당하는 아전인 서리들이 사용하던 건물이다.










 


남군영은 장용외영의 기마병이었던 친군위(親軍衛)가 좌,우열로 각 100명씩 입직숙위하는 건물이다.










 













 


집사청 입구










 


집사청은 궁궐의 액정서(국왕이 쓰는 붓과 먹, 벼루 등을 보관하며 열쇠를 간수하고 여러가지 설비, 비품을 관리하는 관청)와 같이 잡다한 사무를 보던 건물이다.










 













 


노래당은 낙남헌과 득중정에서 펼쳐지는 각종 행사 중에 휴식을 취하기 위한 건물이다.










 


득중정은 활을 쏘기 위해 세운 정자로 편액을 정조가 직접 써서 걸었고, 상량문은 홍양호가 짓고 썼다.










 


낙남헌은 1794년(정조 18)에 완공되었다. 1795년(정조 19)을묘원행시에는 각종 행사가 이 곳 낙남헌에서 치러졌다. 정조는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념하여 군사들의 회식을
이 곳에서 하였으며, 특별과거시험을 치러 급제자에게 합격증을 내려 주는 행사도 이 곳에서 있었다. 또한 정조는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념한 양로연을 시행하였다.











 


화령전 내삼문










 


화령전(華寧殿)은 1801년(순조 원년) 정조대왕의 유지를 받들어 화성행궁 옆에 세운 정조의 영전(影殿)이다.










 


정조의 영정을 모신 운한각










 


운한각의 신계










 


정조의 어진










 













 


이안청은 운한각이 화재나 홍수 등으로 인한 피해를 입을 때, 어진을 피난시키기 위한 건물이다.










 


운한각과 이안청을 잇는 복도










 


풍화당은 화령전에서 제향이 있을 때 제를 올리는 사람들이 미리 와서 머무는 재실이다.










 


제정은 화령정에서 이루어지는 제의식에 사용할 정화수를 뜨는 곳이다.










 


전사청은 화령전에서 제향을 할 때 사용하는 음식을 준비하는 곳이다.










 













 


목어를 쳐 신호를 보낸 행궁초소 내포사










 


미로한정은 행궁 후원(後苑)에 만든 정자이다.











서장대에서 본 화성행궁






 



화성행행도팔첩병(華城行幸圖八疊屛) - 정조가 부친인 사도세자의 회갑을 맞이하여, 정조 19년(1795년) 윤 2월 9일부터 8일간에 걸쳐 모친인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사도세자의 묘소가 있는 화성의 현륭원(顯隆園)을 행행했을 때 거행한 주요 행사를 그린 8첩 병풍이다.(김득신, 이인문 등이 그림)



                                                     

화성성묘전배도(華城聖廟展拜圖)                                                                                            낙남헌방방도(洛南軒放榜圖)









                                                     

봉수당진찬도(奉壽堂進饌圖)                                                                                                     낙남헌양로도(洛南軒養老圖)









                                                     

서장대야조도(西將臺夜操圖)                                                                                             득중정어사도(得中亭御射圖)









                                                     

환어행렬도(還御行列圖)                                                                                                  한강주교환어도(漢江舟橋還御圖)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금마타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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