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삼이 떠나던 날 나는 삼성의료원 빈소에 들려 국화 한 송이 사진 앞에 놓았다 그것 하나로 죽은 사람을 위해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돌아온 다음날 나는 바다로 떠났다 그는 어느 여름날 종로서적 근처 맥줏집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서점으로 뛰어가 책을 들고 왔다 "이형, 이거 이번에 나왔어" 그가 들어앉은 유리관처럼 딱딱한 표지의 시선집詩選集 뚜껑을 열고 굵은 글씨로 '박재삼'朴在森이라 쓰더니, 만년필 만큼이나 소탈하게 웃는다 "요즘 시보다 잡문이 많아" 만년필도 듣고 있었다 그의 만년필엔 잉크가 가득했는데 그는 왜 가난했을까 나는 그의 이름을 보고 웃었지 어쩌면 그렇게 이름 그대로
숲속일까 하고 그의 이름을 풀어쓰면 쓸수록 나무가 나온다 朴(박) 在(재) 木木木(삼), 朴 在 木木木 그의 이름은 숲속 같다 그의 이름뿐 아니라 그의 얼굴도 숲속 같다 그와 함께 걸으면 숲속을 걷는 것 같다 그가 마지막 가던 날 마지막 가는 그의 숲속으로 가지 않고 나는 흑산도로 가는 배를 탔다 흑산도에서 가거도 그리고 하늘에 있는 섬 만재도 자갈밭에 앉아 시 쓰던 사람의 죽음과 가까이 날아든 갈매기를 생각하며 그의 시를 읽었다